가끔은 이렇게/여가 즐기기

11월 1일 일요일 OFF 일상

Jeeum 2020. 11. 1. 16:32

프롤로그

 

어제 VOLO에 쓴 글을 읽다가 엉엉 울었다.

거기에 2017년의 내가 있었다.

엄마가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엄마를 집으로 모셔오기 위해 분투했던 내가 있었다.

잊고 있던 그때가 생각나 엉엉 울었다.

 

거창한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다.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남기는 것은 이런 것이다.

 

가끔 엉엉 울게하기도 하고, 때로 웃음 짓게 할지도 모른다.

 

미래의 어느 날, 2020년 11월 1일을 떠올리며 웃고 싶어서 오늘을 기록하기로 했다.

 

 

OFF 1. 독서

 

6시에 맞춰논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에 눈을 떴다.

유산균을 챙겨먹고, 따뜻한 보이차를 마시며 아침 독서를 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편혜영 장편소설 <홀>이다.

소설집 <소년이로>에 나왔던 <식물애호>의 장편 버전인 것을 바로 알았다.

역시 스산하고 조마조마한 얘기다.

오싹한 기분이 들지만 구멍난 가족, 부부(인간관계)의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하고,

잘 쓴 글을 읽는 느낌이어서 자꾸만 읽고 있다.

 

편혜영. 홀, 문학과지성사

 

해가 떴다. 어제는 화창한 10월의 마지막이었다. 오늘도 그러길 바랐다.

해가 어둠을 완전히 밀어내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면 가람봉을 오르거나 미용실을 가거나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해는 나오지 않았다. 구름 뒤에 웅크리고 있었고, 비가 내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뜻대로 되지 않을 듯했다.

 

 

OFF 2 : 요리 & 커피

 

아침

 

오전 9시 

동생이 어제 가져다준 싱싱한 굴로 전을 붙이고, 겉절이와 망개떡 두 개를 아침으로 먹었다. 

움직이는 것 보다 먹는 양이 많아 다시 체중이 늘 것 같다.

두려우면 피하는 법,

요즘 체중계를 멀리하고 있다.

 

점심

 

12시 반

<메리앤폴>의 피자를 흉내 내 토르티야로 나만의 피자를 구웠다.

야채를 듬뿍넣고, 베이컨과 토마토로 맛을 냈다.

생각보다 맛있다. 또띠 아피 두 장이면 한 끼 식사로 적당하다.

 

 

한 개 더 만들었다. 피아노 샘에게 주어야지~~^^

 

오랜만에 드립 커피를 내렸다.

한동안 캡슐커피에 빠져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

오랜만에 이쁜 잔을 꺼냈다.

 

역시 맛있다.

 

저녁

7시

 

갑자기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 졌다.

사실 밥을 먹지 않을 작정이었다.

동생이 낮에 갖다 준 꽃게를 쪄 먹을 작정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된장찌개를 끓이고

남은 상추로 겉절이를 만들고

굴전을 굽고

새우볶음을 만들고

그러다 보니 상이 너무 그득해졌다.

OMG

 

일단 먹자.

 

OFF 3 : GARDENING

 

오전 10시

 

비를 핑계로 외출을 단념했다.

금요일 퇴근하면서 사온 꽃들을 심었다. 

제대로 보살피지 않아 웃자란 베고니아를 버리고 풍로초를 심었다.

토분 몇 개를 꺼내 카라를 심고, 꽃집에서 덤으로 준 작은 식물도 심었다.

 

 

원래 있던 것들을 정리했다.

새로운 식물을 심고 보니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들이 너무 거칠어 보였다.

스킨답서스의 지저분한 것들을 잘라내고,

묵은 하늘고추와 장미허브를 정리하고, 새로 꺾꽂이 했다.

여름 내내 무성했던 트리안 하트와 수국의 누레진 이파리를 정리했다.

물때 낀 유리병들을 닦아주었다.

화분의 위치를 바꾸었다. 

청소까지 하고 나니, 나의 베란다 꽃밭도 조금 화사하고 이뻐졌다.

 

 

율마를 바람이 잘 통하는 베란다에 내고

그 자리에 물 수선화를 놓았다.

작은 노란 꽃들이 이쁘다.

거실이 화사해졌다.

 

 

OFF 4 : TV 보기

 

<스페인 하숙>을 돌려보았다.

아직 425km도 아직 제대로 못 걸으면서, 산티아고가 궁금해지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다.

하지만,

힘겹게 걷다가 만나는 따뜻한 음식, 고향의 음식을 먹으며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화면 속의 표정을 볼 때마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자꾸 보게 된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예정대로 시윤과 스페인에 갔더라면

저 길에 잠시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그 길에서 펑펑 울었을지도 모른다.

 

다 걷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꼭 그 길의 한 꼭지에 서보리라 생각한다.

 

에필로그

 

밤이다.

어젯밤 유난스러운 핼러윈 소식이 어지럽다.

아마 젊은이들이 그동안 많이 답답했나 보다.

아무 상관없는 핼러윈데이에 열광하다니.

 

어수선한 머리를 오늘도 정리하지 못했다.

이번 일주일간 이 머리카락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은근 걱정이다.

질끈 묶어버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비는 그치고

어둠이 빛을 내몰고 캄캄해졌다.

보름달이 떴는지 모르겠다.

밀린 세탁을 하고

밀어두었던 청소도 했다.

사는 데는 이런 날도 꼭 필요하다.

 

이제 11월이다.

남은 두 달을 잘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