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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2020). 복자에게

Jeeum 2020. 12. 16. 08:14

김금희 (2020). 복자에게, 문학동네.

 

제주 고고리(이삭이라는 의미의 제주어)섬 다랑초등학교 58회 졸업생. 이영초롱, 복자 그리고 고오세.

이영초롱의 시점에서 어린 날과 현재를 오가며 이어지는 제주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그냥 빌려놓은 책 중에 가장 부피가 작아 무게가 안나갈 것 같아 가방에 넣었는데 아직 어둑한 하늘 속, 독서등을 켜고 읽은 책이 하필 제주 얘기여서 심쿵했다. 혼자 사흘간 여행하면서 읽은 <복자에게> 속의 문장들은 심심하지만 건강에 무척 좋을 듯한 제주 채소같은 느낌이었다.

 

때문일까?  읽은 내 생각을 억지로 서평이랍시고 쓰기보다 홀로 있던 공간에서 건조한 마음에 작은 진동을 주었던 문장들을 기억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게 꼭 필요했던 비타민같은 문장들을 옮겨 적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생선은 구우면 고소해지지만 조리면 맛이 화려해진다고 했다. 무, 당근, 피, 감자, 뭐든 넣을 수가 있으니까. (26쪽)

 

"고모. 타자기로 뭐해요?"

나는 어쩐지 무서워져 말을 돌렸다.

"나? 편지 써."

"누구에게?"

"그냥 친구에게 써."

"뭐라고?"

"안녕하냐고."

"안녕. 이렇게만 적어요?"

"아니. 다른 말들을 길고 길게 쓰다가 마지막에야 그렇게 쓰지. 안녕하냐고. 오늘도 안녕히 있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이상한 방식으로 쓰는 편지였다. 보통은 첫머리에 인사를 넣고 다른 소식들을 적기 시작하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은 안녕이라는 인사가 가장 하기 힘들었다는 뜻 아닐까. 그 인사마저 꺼려지고 미안한 마음을 고모가 계속 품고 있었다는 의미 아닐까. (28쪽)

 

그 무렵 고모 나이를 헤아려보면 서른. 지금의 내 나이와 같다. 하지만 그때 고모는 누 구보다고 연륜 있고 나이가 많게 느껴졌다. 서른 살이란 이십 대의 형형한 에너지가 약간 순화되었을 뿐 여전한 활기와 발산을 간직한 때가 아닐까. 마치 새잎과 꽃의 계절인 봄을 보내고 본격적인 성장의 시간을 맞은 초여름의 식물들처럼. 하지만 고모는 정물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화분 속 식물처럼. 나름의 푸름으로 자족하지만 외롭고 단조롭고 분명한 고립이 있는.(29쪽)

 

"사람을 한번 만나면 그 사람의 삶이랄까. 비극이랄까. 고통이랄까 하는 모든 것이 옮겨오잖아.하물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억울하고 슬프고 손해보고 뭔가를 빼앗겨야 하는 이들이야. 이를테면 판사는 그때마다 눈을 맞게 되는 것이야. 濕雪의 삶이랄까. 하지만 눈의 무게에 짓물리지 않으려면 빨리 털어내야 한다고."(39쪽)

 

주차장으로 나오니 하늘에는 달이 나와 있었다. 아직 밤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공기가 차가워져서 하루가 끝날 무렵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차가워짐으로써 그렇게 변화를 암시하고 있었다.(48쪽)

 

너한테 과거란 냅킨 같은 건가봐. 뭘 그렇게 잘 잊고 잘 버려. 했던 윤호의 말처럼. 하지만 그건 걔의 오해였다. 내가 과거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딱히 그리운 시절도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다 잊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무거워서 어딘가에 놓고 왔을 뿐이었다. 어느 계절의 시간 속에, 기억 어딘가에 넣어놓고 열어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늘처럼 잠들 수가 없을때면 밀려왔다. 모든 것들이.(57쪽)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 청보리, 선인장과 에델바이스, 4월의 따뜻한 바람, 산담, 갯강구, 폐비닐, 낮은 지붕의 집들. 나와 고모가 살았던 집은 지금 의용소방서가 되어있었다. (76쪽)

 

복자네는 꾸준히 개를 키웠고 복자는 으레 눈썹을 그려 주었다. 대체 왜 개에게 그렇게 하는거야? 물으면 우리 제순이는 특별하니까, 라고 대답했다. 복자는 그런 제순이의 눈썹이 일종의 농담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 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고도 했다.(81쪽)

 

고모는 우리를 마치 휴게점에 놓인 예쁜 뿔소라 장식이나 종종 빈 화병을 채우기 위해 꺽어오는 들꽃처럼 여겼다. 당연히 거기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처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보듬음이었는지 나는 이후에도 자주 생각했다.(92쪽)

 

책상 서랍 안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잘 안되면 다 쏟아부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깊은 마음 같은 것. 자주 상처받고 여러번 실망한 아이가 쉽게 선택하는 타인에 대한 악의. 그게  뭘 뜻하는지도 모르지만 내 한마디로 그 어른 남자가 겪게 될 곤란에 대한 분명한 만족감. 평소에도 그가 나타나면 뭔가가 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므로 나는 거짓말을 해서까지 그를 변호해주고 싶지 않았다(97쪽)

 

쌓여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산책은 무리였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주택과 상점들의 거리를 통과해 바다 쪽으로 갔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유채꽃이 있었다. 그 극적인 노란빛에는 분명한 환희가 있었으니까.(113쪽)

 

 

청년은 주소를 틀리게 알려준 사실이 모든 걸 말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고오세의 편지가 아예 무가치하지는 않았는데 바로 자기가 읽었고 감동했으며 필요한 경우 자기 애인들에게 인용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 연애가 조금 나아질 수 있었다고. 그러는 동안 청년의 mp3플레이어에서는 듀스의 <여름 안에서>가 계속 흘러나왔다.(124쪽)

 

아침이 오기 전 흰둥이가 낑낑거려며 울어서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어스름한 새벽인데 벌써 물질을 나간 해녀들이 테왁을 띄어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깊은 곳에서 올라온 뒤에 내는 긴 숨소리가 들렸다.(후략) (139쪽)

 

 

(중략) 그런 세세한 기억의 결이 일어나면서 내 마음은 특별한 방식으로 아팠다. 헤어질 무렵에 화를 내거나 적의에 불탔던 것과 달라 아주 순하게 아팠다.(210쪽)

 

그날 오세의 차 뒤에서 일주동로를 따라 달리는데 밤의 오름에서 물결치는 억새들이 보였다. 오세는 가다가 말고 잠시 길가에 섰고, 그건 서서 풍경을 좀 보라는 제안이었다. 창을 내리자 바람이 불어들어오면서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냄새로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안개와 수풀과 그리고 차디찬 습기였다. 멀리 불을 밝힌 세연교가 보였고 돛모양의 푸른빛 조명이 다리 중간에 세워져 있었다.(211쪽)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렇게 묻자 복자는 한참 생각하더니 새별오름 가본 적 있어? 하고 물었다. 겨울의 오름은 한적할 줄 알았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주차장이 다 차 있었다. 억새는 큰 바람이 불 때마다 차락차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비탈길을 따라 마치 개미처럼 열을 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의 동선이 억새풀 사이로 도드라졌다. 산담으로 에워싸인 제주의 묘들이 눈에 들어왔고 귤과 간식거리를 파는 트럭들도 보였다. 우리는 오랜만이네. 인사하고는 말없이 오름을 올랐다. 복자는 굽이 낮기는 하지만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런데도 성큼성큼 잘 올라갔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속도 내어 나보다 먼저 올라갔다가 내가 멀어진 것ㄹ 꺠닫고는 다시 내려오기도 했다.

"영초롱아, 저기 나무 보이니? 저게 새별오름에서 요즘 제일 유명한 '나홀로 나무'다. 사람들이 그렇게 사진을 찍어 올린다더라. 오세가. 왕따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홀로랑 왕따랑 느낌이 참 다르지? 어쩌면 그게 그거처럼도 느껴지고."

"그래. 그게 그거 같다. 자의냐 타의냐의 차이일 뿐"

"근데 그러면 엄청난 차이 아니냐? 스스로 하는 것과 시켜서 하는 것."(213쪽)

 

나는 차로 갔다가 다시 복자에게 돌아가서 "너." 하고 부른 채 얼굴을 바라보다가 "잘 지내" 하고는 돌아서 차를 탔다. 나는 그때 복자가 나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더 아팠다. 상처가 깊은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믿을 힘이 없다는 것. 눈으로 보이지 않는 편까지 헤아려 누군가의 선의를 알아주기 힘들다는 것까지는 나 역시 헤아리지 못했다. 사실 내게는 있었을까. 그런 믿음이. 1999년의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세상을 믿었을까. 부모를 믿었을까. 그들의 실패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던 것이 아니라 그들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밀려왔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윤호가 네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너무 참혹해서 눈물을 흘릴 거야. 라고 하며 내게 마지막까지 기대라는 것을 했을 때 나는 그런 건 없어.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변해버린 마음은 결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누군가를 버린 사람들은 그냥 버린 사람들로 남는다고. 오직 그렇게만 믿으려 하면서.(218쪽)

 

우리는 그때 안덕면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창으로 천여 평의 동백밭이 보이는 곳이었다. 내 얘기를 듣는 오세의 표정은 울그락불그락해지다가 캄캄해지더니 나중에는 무표정해졌다. 마치 이렇게 저렇게 울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보다가 나중에는 그냥 다 뭉쳐 뚝 떼어놓은 찰흙처럼.(220쪽)

 

휴가를 내고 사흘간 혼자 섬을 돌았다. 언젠가 나뭇가지에 걸린 방패연을 한참 올려다본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다 찢기고 나서도 여전히 바람이 불면 그것을 타고 하늘거리면서 오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던 장면이 생각났다. 중학교 어느 하굣길에서 나는 그것이 누군가를 아프게 떠올리면서도 좋은 기억들도 잊히진 않아 어쩔 수 없이 슬픔과 기쁨 사이에 걸려있는 내 마음 같다고 일기장에 적었더.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또 같은 자리에 놓인 기분이었다.(221쪽)

 

(중략)일종의 항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여정이지만 여행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조금씩 밀려나 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어김없이 되돌아갔다. 책상으로, 복자에게로, 아니 해안가를 걸으며 영웅에게 거짓말했던 것처럼 하하하 하고 한번 웃어보던 어린 나에게로, 하지만 하나도 용감해지지 않고 슬퍼지기만 하던 오후 속으로.(223쪽)

 

 복자야 안녕. 이 편지가 너에게 전달이 될지 알 수가 없구나. (중략) 이런 팬데믹의 세상이 올 줄 나도 알았을까. 한국의 상황을 전해 들으면서 나는 여기까지 그러지는 않으리라 낙관했어. (중략) 정말 상상할 수가 없을 만큼 춥단다. (중략) 그렇게 누군가의 죽은 기록이 살아 있는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내 상상을 벗어나는 일이었어. 투약일수와 약제 이름, 그리고 그 용량만 건조하게 적힌 종이 따위가 말이야.

 

대체로 두시쯤이면 끝이 나고 그러면 3구역에 자리한 셋집으로 돌아온다. 전염병으로 동시가 봉쇄되고 외출이 금지되면서 나는 이 오래된 아파트먼트의 입주민들과 꽤 친해졌어. 권장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저녁이 되면 발코니에 서서 좀 멀찍이 대화를 한다. 저녁 여덟시는 파리의 노을이 남아 있을 시간이고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에게 보내는 파리지앵들의 느린 박수가 계속되는 시간이다. 맞은 편에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할머니가 사는데 늘 이런 말이 쓰인 종이를 들고 나오지. 얘들아. 나는 1944년 파리 공습의 생존자란다. 그러면 박수는 그 발코니 쪽으로 쏟아진다. 텅 빈 골목에서 그 박수 소리는 마치 물결처럼 어디든 갈 수 있을 듯이 흐르지.(229쪽)

 

'여름 안에서'의 사장은 당연히 처음 보는데도 어딘가 낯익었다. 내게 속은 것을 알았던 그 여름날의 풍경을 오세가 아주 놀랍도록 실감 나게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었다. (235쪽)

 

그리고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라도 냉동고에 넣으면 얼마든지 다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된다고 말할 줄 알았던 현명한 나의 친구, 복자에게.

 


누구에게나 붙이지 못한 편지가 있다.

날마다 부르지만 부르다 목이 쉬고 그러면 편지라도 쓸 수 밖에 없는 그리운 사람이 있다. 소설 속 영추롱이도 영초롱의  고모도 매일같이 '복자에게', '규정아 건강하니?'라고 편지를 쓴다.

생각만 해도 안타까운 편지이지만 닿을 수 없는 거리가 그들 사이에 존재한다.

 

2020년 이 참혹한 시간 속에서 그나마 우리가 버티고 희망을 보는 이유는

그리운 누군가가 있고, 다시 그들을 만날 날이 반드시 있다는 바람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