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1. 황석영(2020). 철도원 삼대

Jeeum 2021. 1. 7. 08:26

황석영 (2020). 철도원 삼대, 창비.

 

작가의 말까지 합쳐 모두 619쪽 장편소설의 읽기를 마쳤다. 신체 한가운데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몰려나온다.

 

60년대에 태어나 자란 50대의 내가 생각이나 마음으로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부분은 역사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가시 금이 할매와 함께 주안댁이 나오거나 이철의 독립운동과 해방이후의 좌익(? 나는 도저히 이 단어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활동가들의 얘기는 마치 영화 밀정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해서 소설 읽는 쫀쫀한 맛을 느끼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 408일간의 굴뚝 고공 농성을 하던 증손자 진오가 복직한 공장으로 가서 만나는 현실로 끝이 나자 작가에 왜 이런 100년의 역사를 소설을 굳이 담고자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노동자들의 얘기를 도저히 남기지 않고 안될 것 같았던 황석영 노작가의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개인의 삶과 가족을 희생을 기꺼이 바친 분들이 해방이후 좌익으로 몰려 또다시 같은 고초를 겪었던 사실. 친일로 잘 먹고살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와 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사실.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한 강대국에 목적에 이용된 그들 덕분에 죄익으로 몰려 전국에서 희생된 노동자 농민 자신과 가족들의 아픈 이야기들.

 

이런 역사적 사실 속에 한 가족의 4대가 지나온 백년의 세월.

 


 

소설의 읽기를 마친 오늘은 엄마 가신 날로부터 딱 일년이 되는 같은 날 아침.

 

날짜를 굳이 의식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실 어제부터 나는 다소 멍청해져 있었다. 퇴근 후 멍하니 TV만 바라보다 일찍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묵직한 두통이 온몸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진통제를 먹고 세수를 하고 차가워진 느낌을 안고  희부옇게 밝아오는 바람 가득한 창을 보며 남은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소설의 구상이 1989년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작가 자신이 유소년 시절 살았던 영등포를 교집합으로 공감을 느꼈던 그 철도 기관수였던 노인과의 대화가 이 소설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소설가는 실로 작은 우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생각하는 철학자이다. 북한 혹은 평양이라는 특별한 공간과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가와 그 노인과의 우연한 만남이 남긴 결과물이 <철도원 삼대>의 문장이며, 이 소설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거대할 것이다.

 

사실 나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주느 위대함보단 언제나 어디나 있을법한 가족들의 소소한 애기들이 더욱 좋았다. 기차를 운전하는 자들만이 볼 수 있는 대한민국과 만주 등의 풍경에 대한 묘사는 당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과 골짜기, 강과 물과 하늘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척 감동적이었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진다.

 


기억을 위해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적어둔다.     

 

아버지 이백만(영등포 철도 공착장 근무), 할머니 주안(언제나 귀신으로 나타나지만 매우 중요한 인물)

 

아부지 이일철(한쇠), 철도 기관수였지만 해방 이후 노동자 사회 중의 운동을 하다 월북 아내 신금이

작은 아버지 이철(두쇠) 독립운동가, 공산주의 사회운동가 , 아내 한여옥

 

손자 이지산(월북하여 기관수로 일하다 전쟁 중 군수물자 이동을 위해 내려옴. 전쟁 중에 다리 하나를 잃음), 아내 윤복례

 

증손자 이진오 굴뚝 농성 408일의 활동가

 

 


독서 중 노트에 메모했던 문장들.

 

그때에 한여옥은 수리를 내어 웃었다.

"그냥 따뜻하게 받아주시면 돼요. 세상사란 우리가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잖아요?" 275쪽

 

황혼녁이 되자 넓고 푸른 수수밭이 펼쳐진 들판 끝으로 세숫대야만 한 발간 저녁 해가 천천히 저물었다. 바람에 날리는 바다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흔들리며 저무는 햇빛을 받은 부분들이 반짝거렸다. 큰 새 한 마리가 너른 들판 위의 어둑한 하는가녁으로 부지런히 날개를 치면서 날아갔다. 508쪽

 

진오는 국민학교 시절에 할머니 신금이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그랬다 치고, 왜 우리 식구들은 힘센 쪽에 붙지 못하고 맨난 지는 쪽에만 편들었어요?"

"왜. 약한 쪽 편드는 게 싫으냐?"

"물론이지요. 너무 손해잖아요?"

그러면 할머니는 감실감실 주름살 잡힌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리고 신금이는 덧붙였다.

"오래 살다 보면 알 수 있단다.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 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 5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