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TRIP

제주 올레 19코스

Jeeum 2021. 1. 31. 15:36

2021년 첫 올레 여행은 19코스

 

조천 만세동산 ~ 김녕 서포구 19.4km

 

제주로 들어가던 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사나웠다.

 

관덕정 분식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행여나 내일은 날이 맑기를 소망하며 잠이 들었다.

 


 

바다는 밤새 거친 바람소리를 냈다.

아침을 먹고, 빈둥거리던 10시까지도

바람은 여전했고, 눈발도 함께 나부꼈다.

 

용감한 동무가 먼저 나서자 했다.

일단 시작하고 도저히 어려우면 도중에라도 중지하면 될 일이니까^^

 

 

19코스 출발점이 <조천 만세동산>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바뀌었다.

<제주올레안내소>가 새로 문을 연 것이다.

안내소에서 따뜻함을 얻고, 복장을 다시 갖추었다.

출발선에서 또 하나의 스탬프를 찍었다.

 

쟂빛 하늘, 몰아치는 겨울풍에도,

돌담 위의 꽃들은 싱싱하기만 하구나!!

 

<문화유산답사기>가 알려준 대로

먼저, 조천만세동산 [제주항일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제주민의 항일운동 흔적이 모여있다.

방문객이 적어서일까

기념관을 지키는 분들이 매우 반가워해주었다.

반갑수다!!

 

이제 본격적으로 걷는다.

항일기념관 뒤편 나무에 사랑스런 올레 리본이 달려있다.

따라가면 조천 바다가 바로 나온다고 되어있다.

마을 길을 따라간다.

멀리 바다도 보인다.

조금씩 하늘빛이 푸르러진다.

 

바람은 여전히 거칠다.

마을 어르신이 약간 구부정한 등으로 앞서 걸어간다.

하얀 등이 말한다.

이렇게 투덕투덕 걸어서 세월을 헤처 왔노라고......

 

그 등이 당당하다.

오래 건강하시길 빌어본다.

 

바닷가에 바람 속에서도 당당한 정자가 보인다. 

정자에 올라서니

바람이 휘몰아친다.

 

관곶이다.

여기가 제주의 울돌묵이라고 했던가?

눈이 닿지 않는 바닷 속은

아마 방향을 알 수 없는 파도들이 휘몰아치고 있겠지!!

 

관곶은 육지랑 가장 가까운 제주라고 했다.

해남 땅끝마을이 가장 가까운 곳.

관곶에 서서 육지를 바라보면서

제주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날씨가 맑은 날에는

추자도와 남해의 섬들마저 보인다는 이 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갈망했을까?

 

관곶을 지나는 길바닥에

'제주에서 편안했기를'이라고 쓰여있다.

 

'걱정 마. 언제나 너는 평안을 주었어.'라고

답해 주었다.

 

멀리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검은 돌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파도빛의 등대도

힘을 잃지 말라며 속삭여 주었다.

 

 

신흥리 백사장이다.

이 곳은 밀물과 썰물의 교차가 커서 갯벌이 유독 넓다 한다.

 

바다에 두 개의 돌탑이 보인다.

신흥리 방사탑이다.

방사탑은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세우는 돌탑이다.

물이 들어와 있는 지금은 바다에 깊이 잠겨있다.

방사탑은 새들의 고향이자 집이다.

씩씩하게 날다 지친 날개가 휴식 하 듯

수많은 새들이 옹기종기 빼곡히 앉아있다.

 

신흥리 백사장을 벗어나면 마을길이다.

제주 다문화센터로 바뀐 신흥초등학교

제주대학교 해양과학연구소

태국 마사지 샆 <몽>

일본 구식 아파트를 닮은 집들을 지나간다.

 

어디든 검은 화산석으로 담을 쌓았고,

돌 틈 사이마다 다육이랑 소라 그리고 이쁜 인형들까지

아기자기 소복소복 올려두었다.

 

다시 바다로 나가

왼쪽으로 제주 바당을 끼고 걷는다.

어느새 개인 하늘엔

흰 구름이 뭉게뭉게 퍼져 나고,

파도마저 조용하다.

아침의 거세었던 바람의 흔적은 어디로 갔을까?

껴입은 옷 때문에 덥다.

외투 하나를 벗었더니 살 것 같다.

 


함덕 해수욕장이다.

멀리 서우봉이 보인다.

 

이 곳은 많은 사람들과 가게들로 북적인다.

서우봉을 넘으려면 제대로 밥을 먹어야 한다.

해녀 김밥집으로 들어갔다.

맛집인가? 복잡하다.

 

해물라면도 김밥도 아주 맛있다.

제주 에일 맥주까지 곁들여 먹고,

휴대전화까지 충전했다.

 

서우봉을 오른다.

소가 길게 누워있는 섬이 서우봉이다.

 

이곳은 일출과 일몰이 모두 아름다운 오름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둘을 모두 볼 순 없지만

서우봉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우리에게 힘차게 걸어갈 힘을 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는 다른 법^^

인적 드문 오름에서

 만난 그 한 사람 때문에

서우봉 걷기는 불안함이 동행했다.

혼자도 아니고 둘인데

남자 하나가 무섭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무사히 오름을 넘어왔다.

하지만 여유롭게 경치를 즐기진 못했다.

급하게 찍은 사진만 남았다.

서우봉은 풍광 좋은 제주 북동쪽 바다 곁의 오름이다.

안내서에 적힌 대로

일출도 일몰도 모두 볼 수 있는 곳.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제주 오름인 것이다.

 

서우봉을 내려오니 북촌이다.

북촌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 가장 많은 제주인이 돌아가신 곳이다.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의 배경이기도 하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 <바보 노무현>을 만났다.

대통령으로서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한 첫 대통령.

북촌리 사람들도 그 것을 알고 있나 보다.

봉화마을로 착각할 만큼 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기념관 앞에 <애기무덤>이 있다.

동백을 닮은 작은 보자기가 곳곳에 놓여있다.

가슴이 미안함에 뭉클해진다.

위령비를 지나며 돌아가신 이들의 평안을 빈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미안함을 전할 길이 없다.

 

북촌 마을을 지난다.

그리고 바다로 나간다.

파란 간세가 다려도라고 알려준다.

다려도는 북촌 바다 앞에 있는 무인도를 말한다.

나는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올레 19코스 마지막 편의점을 지난다.

넓은 <1132> 번 해안도로를 건넌다.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차로 여행하는 이들은 걷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이제 우리는

동복리를 향한다.

아직도 중간 스탬프 간세는 멀다.

 

일에 쫓겨 간신히 틈을 내어 동행한 동무는

평소와 다르게 체력이 달리는지 힘들어한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오늘의 걷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어서 간세가 나오기를 바라며

마지막 힘을 내어 토닥토닥 걸어 나간다.

 

 

삶은 언제나 그렇다.

기쁠 때가 있으면 아플 때도 있고,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와야 할 때도 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버거운 짐일 때도 있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때도 있다.

 

나쁘다고 삶을 포기하는 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구겨버리는 것과 같은 것.

 

힘들 때는 잠시 쉬고,

의지하고,

함께 하면 된다.

 

이제 다시 마을로 들어간다.

숲으로 들어간다.

동복 교회를 지난다.

하늘 향해 솟은 십자가 너머로

파란 하늘이 손짓한다.

이제 중간지점이 나타나야 하는데 자꾸 숲으로 들어간다.

동복리에는 마을이 없나 보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만 가까이 있다.

 

동복리 마을 운동장이 나왔다.

멀리 중간 스탬프 간세가 보인다.

스탬프를 하나 더 추가하고,

감귤 하나씩 먹었다.

그래도 힘이 나지 않는다.

여긴 택시를 부를 수 없는 곳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걷는다.

 

힘겹게 걷는 동무를 앞세웠다.

등에도 표정이 있다. 버거워 보인다.

언제나 통통거리며 가볍던 발걸음이 오늘따라 무겁다.

 

헐! 여기부터는 곶자왈이란다.

깊은 숲이라는 의미다.

유달리 나무와 숲을 좋아하는 동무인데 

숲이고 나무이고 즐길 틈이 없다.

떠나온 곳에서 걸려오는 전화와 씨름하느라 더욱 힘겨워 보인다.

 

벌러진 동산이다.

숲과 숲이 갈라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이젠 완전 숲이다.

택시가 다닐 도로가 언제 나올지 막막하다.

하여튼 걷는다.

 

걷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얼마를 걸었을까?

 

거대한 바람개비만 그 크기만큼 힘찬 소리를 내며 따라온다.

여기는 동복 북촌 풍력발전단지이다.

 

드디어 사유지도 끝인 듯 울타리를 벗어났다.

고개 위로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오늘은 여기까지이다.

 

파란 리본은 이 길을 건너 다시 숲길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김녕 포구까지 걷기엔 동무의 발이 견디질 못한다.

 

 

약 17킬로를 걸은 것도 장한 일이다.

나머지는 담에 해도 된다고 구름이 말을 걸고 있다.

 

우린 택시를 타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