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현기영 (1994). 순이삼촌
지난해부터 제주 올레 완주를 목표로 매월 한번 제주를 찾는다. COVID 19 와중이라 조심조심하다 거리두기를 지키고, 제주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노력하며 걸었다. 그저 바쁜 일상에서 작은 여유를 찾기 위한 소소한 바람이었는데, 자주 가다 보니 제주는 눈에 좋고, 마음에만 좋은 그저 그런 관광지가 아니었음을 알아가고 있다.
기왕 걷는 김에 제주에 대해 알고자 이책 저책 찾다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이 제주 편임을 알게 되었다. 제주는 고대시대(마을)를 거쳐 탐라국이 되었고, 고려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같은 국가로 묶이고 조선시대가 되어 처음 제주목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에야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육지 어디서부터 출발하든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그 옛날 육로를 걷고, 뱃길로도 며칠을 꼬박 걸려야 닿을 수 있는 섬. 섬이기 때문에 수많은 얘기들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제주를 걷다 보면 어디서나 보이는 한라산 기슭 골짜기 동굴마다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백골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범접하기 어렵게 우뚝 솟아 있는 고고한 자태 안에 수많은 사연을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제주 4.3>은 존경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국가 차원의)를 시작으로 어설프게 알고 있는 역사 중 하나이다. 대학 4학년 수학여행으로 난생 처음 제주를 찾았던 후배가 있다. 그녀는 처음 맛본 제주가 너무 좋아 기를 써 제주에 가서 살게 되었고, 종국에 제주 사람과 결혼하여 서귀포에 살고 있다. 그녀가 제주인에게 4.3은 육지 사람인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막상 제주사람과 살다 보니 4.3 사태에 돌아가신 일가친적이 너무 많았고, 비슷한 상황이 어느 동네이건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음력 섣달 여드렛날 웬만한 제주 토박이 집에는 제사를 지낸다고도 했다. 한꺼번에 많은 귀신들이 마을을 떠돌고 있을 것이라 했다.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른 집으로 가서 또 제를 지내고 하룻밤에 서너 집을 돌기도 한다고 했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땐 미안하지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제주는 그저 아름다운 섬, 여유나 힐링을 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9개의 올레길을 걸었다. 무작정 시작한 올레 걷기를 하다보면 내 걸음이 닿는 곳에 얽힌 얘기들을 알게 된다. 그 종착지에는 언제나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4.3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었다.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월 혼자 처음 걸었던 18코스의 마지막은 [조천 만세동산]이었다. 섬나라 제주는 독립운동이 아주 활발했던 곳이라고 한다. 만세동산이 있는 조천 <북촌리>는 해방 후 이념 논쟁으로 극심한 피해를 본 대표적 마을이었다. 같은 18코스 초입에 있는 별도봉 아랫마을 화북동에도 한마을 전체가 불에 타 아예 사라져 버린 흔적이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비어버린 곳에는 오랜 시간 동안 휑한 바람만 불었다. 조촌 북촌리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듯 높게 세워진 위령탑 위로 겨울바람만 불고 있었다.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며 이번엔 꼭 19코스를 걷고자 했다. 그 길에는 북촌리 <너븐숭이>가 있고, 거기에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 둘레에 보기에도 애달픈 애기무덤이 있고, 위령비와 현기영 선생님의 <순이삼촌> 문학비가 세워져 있었다. 모진 바람이 구름마저 몰고 간 하늘은 코발트 빛 색으로 청청한데 그 길에 선 두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미안했다. 아프게 한 것이 우리들 같아 미안했고, 피어보지도 못한 채 저버린 어린 목숨에 미안했고, 제대로 알지 못해 미안했다.
걷기 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순이삼촌>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살의 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여인은 그날의 기억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었다. 하필 순이삼촌의 옴팡진 밭이 학살의 현장이었다. 가족과 이웃의 죽음을 거름으로 자란 것들을 먹고 살아온 여인의 삶은 그 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정리했다. 이것이 제주인들에게 4.3이구나 싶었다. 잘못된 정치는 이렇게 순박한 민초들을 떼로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거대한 국가 조직이 마음만 먹으면 어리석은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도 피해자이나 누구도 피해자라고 말도 못 한 채 오랜 세월을 죽은 사람의 영혼이 되어 산사람 인양 살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마는 것이 그때의 사건이구나 생각했다. 당연히 국가가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해야 하는 일임에도 오랫동안 외면했구나 했다. 노무현의 사과는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 당연한 것조차 그토록 세월을 필요로 했구나 싶었다. 제주인에게 4.3의 상처는 그렇게 깊고 깊고 오래오래 지속되었건 것이다.
단편소설 <순이삼촌>은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4.3사건의 규명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었지만 현기영 선생은 이 때문에 정보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은 받았고, 후유증으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도서관에서 들고온 것은 1995년 7월 초판이 나온 [동아출판사의 한국소설문학대계 72 <순이삼촌> 외, 현기영]이다. 해설에 비평까지 합쳐 500쪽이 넘는 편집에 모두 16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이제 두세 편을 읽었을 뿐인데 모두를 읽은 듯 먹먹해서 미리 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