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양귀자(1998). 모순
시윤의 기숙사 마지막을 핑게로 서울 나들이를 했던 날.
북촌 가회동 전망대 집에서 남산을 바라보며 시윤이 알려주었던 책.
도서관에서 근로를 하며 읽었다던 책.
세상의 모순에 허우적대던 나의 20대
아마 그때부터 꽤 많은 소설을 읽었는데......
시윤이 작가와 책명을 말했을 때,
이미 유명작가인 그녀와 함께 쉽게 와닿는 않는 <모순>이 있었다.
읽었을텐데....
스토리가 꽤 익숙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국 다시 읽어야 했다.
이것이다.
이 공간에서 내가 서툰 문장으로 책에 대한 소박한 정리를 남기는 이유가......
언젠간 잊혀지겠지만 가능한 담아두기 위해......
소설은 우리들의 이야기기도 하니까^^
양귀자(1998). 모순, 살림.
안진진
전혀 다른 생을 살고있다고 안진진이 생각하고 엄마와 일란성쌍둥이 이미.
엄마의 삶은 불행, 이모의 삶은 불행.
이렇게 시작한다.
총
17개의 클립
1. 생의 외침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었다.
2. 거짓말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다.
"보라색 라일락을 한무더기 꽂으면 예쁠 것 같아서 사 봤어요. 받아 주세요." (33쪽)
3. 사람이 있는 풍경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임에 틀림없으니까.
4. 슬픈 일몰의 아버지
해질녁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켠에서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5. 희미한 사랑의 그림자
나는 왜 갑자기, 어딘가에서 그 남자의 냄새 나는 양말을 때끗이 빨아 놓고 잠들 수도 있겠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까......
" 이거, 실꽃풀이야. 실처럼 가늘고 눈처럼 흰 꽃이 하늘 향해 총총 피어 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지. 이런 몸을 하고 바위 틈에서 자란다면 믿겠니?"
실꽃풀. 한줌 입김에도 꽃잎들은 눈가루 날리듯 떨어지고 말듯하다. 그 넓고 넓은 산 속에서 이런 희미한 꽃을 찾아 내는 사람.
"자, 이건 희제비꽃. 만나기 힘든 꼬인데 운 좋게 찍을 수 있었어. 이름처럼 너무 소박해서 좋아. "
인화된 희제비꽃은 무성한 타우너형 잎들 속에 숩죽인 모습으로 다섯 송이쯤 피어 있다.
"이건 큰들별꽃. 다음 장소로 이동하느라고 계곡을 건너다가 기슭에서 이 꽃을 발견했는데......"
김장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놀라 쳐다보니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푸른 잎사귀 속에 숨어서, 저토록 아련한 큰들별꽃들이, 깜박깜박 조용히 빛나고 있는거야. 안진진. 나, 그냥 울어 버렸다. 너무 작아서... 아니, 저 홀로 숨어서 이렇게 아름답게 살아도 되는가 싶으니까 무지 눈물이 나네......"(94쪽)
6. 오래 전, 그 십 분의 의미
철이 든다는 것은 내가 지닌 가능성과 타인이 지닌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다.
7. 불행의 과장법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도
거대한 불행 앞에서 차라리 무릎을 꿇어 버리는 것이 휠씬 견디기 쉬운 법이다.
8. 착한 주리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 가을을 건너가고 있는 높고 푸른 하늘이 무심하게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164쪽)
"내가 살아 보는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어." (161쪽)
9.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10. 사랑에 관한 세 가지 메모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취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보장하는,
묽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11. 사랑에 관한 네번 째 메모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 주지 못한 채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무엇이다.
12. 참을 수 없는, 너무나 찹을 수 없는
세상의 숨겨진 비밀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몹시 불행한 일이다. 주리를 보면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평생 동안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다. (208쪽)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담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중략)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우는다 것은 언제라도 흥미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210쪽)
13. 헤어진 다음날
어제 아침엔 이렇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14. 크리스마스 선물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
슬프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이렇게 어긋나다니...... 안진진. 가엾다. 나영규도 가엾다. 아버지는 더 가없다. 왜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었을까?
15. 씁쓸하고도 달콤한
사랑조차도 넘쳐 버리면 차라리 모자라는 것보다 못한 일인 것을.
16. 편지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시각이면 아마 나는 떠났을 거야. 그때 나한테 와 줘. 와서 나를 수습해 줘.......
17. 모순
이모가 죽고도 세월은 흘렀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 사방에 꽃향기가 난만했다. 겨울이 있어서 봄도 있을 수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 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의 별볼일 없는 삽화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들 안에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걸어 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268쪽)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오가 가까운 시간까지 읽고 마무리짓는다.
봄이 가까운지 베란다의 이파리들이 싱싱하다. 용감하게 잘라낸 거친 줄기에도 작은 잎들이 잔뜩 달렸다. 이제 삶에 대한 세세한 계획이 불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어차피 인생이 <모순> 자체인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2021년 지금 이미 65세가 되어 있는 작가는 40대 초반에 이 소설을 썼다. 작가는 이 글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빠르게 읽어야 했다. 동전의 양면이나 해와 달, 양지와 음지는 모두 한몸이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이제 24세가 된 시윤이 왜 이 소설을 의미있게 받아들였는지 들어볼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