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김연수(2020). 일곱해의 마지막
김연수(2020). 일곱해의 마지막, 문학동네.
2020년 베스트셀러
김연수의 장편소설
지난 주말 제주 올레 여행에 동반했다.
새삼스레 <백석>의 시가 다가왔다.
김연수 작가는 1957년부터 7년간, 그러니까 백석이 북으로 가서 살다 죽은(?) 1963년까지
그 마지막 칠년의 삶을 작가적 상상과 소망으로 소설을 구성한 듯하다.
공산화된 당시 이북 상황에서 '자신을 닮은 시'를 쓰지 못했던 백석의 불행과 고통을 같이 느끼며,
작가로서의 존경을 닮아 알 수 없던
그 마지막 칠년을 이렇게 소망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나는 시를 잘 모르고, 시인도 잘 모른다.
허나 <백석>은 아주 조금 안다.
백석을 생각하니 통영이 떠오른다.
통영에는 그의 흔적이 꽤 많다.
그의 시를 읽으면 사랑하는 이를 향한 절절한 관심과 마음이 전해온다.
통영 1
옛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아직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통영 2
구마산의 선창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잘한 물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라애 가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녁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서울 성북도 <길상사>도 <백석>과 <길상화>보살의 흔적이다.
백석이 그녀에게 주었다는 시는 너무나 유명하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탸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김연수 작가의 이 책에는 통영의 천희와 나타샤도 등장한다.
친구들도 북으로 간 문인들도 많이 보인다.
볼 수 없고 알수 없는 흙의 장막에 갇혀버린
감성 철철 넘치는 시인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언어면 그저 행복했을 우리의 젊은 시인은
과연 어떤 생을 살았을까?
괜히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