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um 2021. 3. 23. 18:49

일요일이 바쁘다.

 

느긋하게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순간은 이른 아침, 잠시의 독서 시간 정도. 후후^^

 

밀린 집안일을 하고,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윤이를 깨워 번개시장으로 달려간다(이렇게 마음이 분주하면 레슨을 빼먹고 싶어 진다. 사실 조카가 없었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시장 상가의 문이 모두 닫혀있다. 이렇게 한꺼번에 노는 날도 있구나 싶었다. 실망이다. 그래도 몰라 혹시나 하고 걸어 들어갔다. 다행스럽게 모종을 파는 가게가 문을 열고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지금이 씨앗이나 모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계절이니 특별히 문을 열어둔 것이라 생각 들었다. 장사 속이든 배려이든 감사하다.

 

상추 모종을 샀다. 그것도 듬뿍. 이것을 윤이에게 심게 할 것이다.

 

점심을 먹고 밭으로 갔다. 그렇지만 오늘을 생각보다 춥다. 바람마저 거칠다. 나의 텃밭은 낮지만 산자락에 있어 더욱 바람이 세게 느껴진다. 작은 도구를 넣어두는 사물함이 바람에 통째로 넘어져 있다. 조카와 둘이서 세워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땅이 다시 단단해져 있었다. 밭을 만드려니 다시 삽으로 파헤쳐야 했다. 힘든다. 둘이서 삽질을 하다 어린 시윤이 먼저 주저앉는다. 당연하다.

 

시윤에게 상추 모종을 심도록 했다. 부추옆에 상추. 맞는 조합인지 모르겠으나 시윤은 나름 정성을 다해 심었다. 모두 심고 나니 보기에 참 좋다. 모종 사이의 간격이나 줄이 뭔가 어설프지만 그래도 좋다. 대학을 마치고 취업 준비 중인 조카의 속이 편할 리 없지만 주말마다 고모집에 와주고, 함께 해주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는데 고모의 취미인 텃밭일 까지 함께 해주니 참으로 대견하다.

 

파헤친 흙에서 돌맹이를 골라내고, 뭉친 흙은 풀어주고, 두둑을 만들기 위해 고랑을 만들었다. 작년에는 뭐가 뭔지 전혀 몰랐다. 올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3개의 두둑을 만들었다.

 

비닐로 멀칭을 하고 완두를 심었다. 책 <작은 텃밭 소박한 식탁, 김인혜>을 보고 3월은 완두를 심고 싶었다. 제대로 멀칭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구멍 하나에 3개의 씨앗을 심으라 적혀 있어 그렇게 했다. 구멍을 좀 더 뚫어서 씨앗이 흐트러지지 않게 물이 잘 들어가도록 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다. 싹이나 날까 싶다. 자신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없는 이는 언제나 화려했던(?) 과거를 붙들고 산다.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빈 곳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추려고 오히려 강한 척하고, 핵심을 벗어난 행동을 많이 한다. 농사에 있어 내가 그렇다. 옆 밭의 언니는 친구가 아니다. 농사의 선생님이다. 차 한잔 하자고 할 일이 아니다. 배워야 한다. 많이 물어보고 피드백도 자주 받아야 한다. 혼자서 책으로 농사를 짓는 일은 불가능하다. 내 밭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힝! 

 

나머지 두둑에는 쑥갓과 모둠 쌈채소 씨앗을 뿌렸다. 씨앗이 너무 작아 손가락으로 작은 골을 파고, 솔솔 줄뿌림을 하고, 살짝 흙을 덮어 주었다. 조리로 물을 뿌려줄 때도 혹시나 밀릴까 봐 조심조심 뿌려주었다.

 

올해 첫 파종이다.

 

나머지 땅도 모두 두둑을 만들고 싶었는데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추워서 일을 계속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얼른 짐을 싸서 내려왔다. 뽀시래기 농부가 제대로된 농부가 되려면 이 거센 바람부터 친해져야 한다. 제주 올레길의 바람, 팔공산에서 부는 바람. 참으로 친해져야 할 바람이 많다. 보호받는 실내가 아닌 야생의 바깥세상. 그곳의 공기와 바람과 물을 먹고사는 식물들과 충분히 대화해야 할 것 같다.  

 

포근한 집을 들어서니 따뜻해서 참 좋다. 안쓰던 근육을 쓰고 나니 온몸이 뻐근하다. 하지만 기분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