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um 2021. 4. 1. 20:04

새로운 공간을 찾았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낙동강 주변에는 화사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대구 김해를 오간 지 올해로 17년째입니다. 차를 몰다 문득 무작정 걷고 싶어 질 때가 있습니다. 삼랑진의 봄날입니다. 지금은 자취만 남은 낙동강역에 서 봅니다. 오랜동안 한결같이 흐르던 강을 바라보았을 작은 역이 되어봅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마중하고 떠나보냈던 작은 역이 마치 나인듯합니다. 역 앞으로 난 길을 건너면 바로 낙동강입니다. 바다와 곧 만날 강은 꽤 폭이 넓습니다. 강 건너에는 낮은 산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눈에 거슬리는 것 없이 탁 트인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채워줍니다.

 

 

낙동강변에는 공원이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4대강 공사의 흔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낙동강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길에는 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 길을 따라 왼편으로 가면 양산이고, 오른쪽으로 달리면 창원으로 간다고 합니다. 끊도 없이 이어진 벚꽃의 조명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면 꽤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과속이라도 할 것도 같고, 아예 달리기를 포기하고 그저 타박타박 걸어가기도 할 듯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길에 꽃이 피어있습니다.

 

삼랑진은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서 다시 바다로 흘러가는 곳입니다. 두 개의 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지점에 파장이 다른 세 개의 물결이 일렁이나 봅니다. 그래서 '삼랑' 나루터, 삼랑진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대구 방향 삼랑진교가 끝나는 곳에 어느 날 부터 누군가 하얀 건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저 집은 카페가 되나 보다 싶었습니다. 참으로 전망 좋은 터에 집을 짓는 이가 철없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 집의 2층쯤에서는 앞으로는 낙동강과 강을 낀 낮은 산들이 보일 것이고, 뒤쪽으로는 삼랑진 역사와 철길이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집을 나서면 부드러운 땅과 물과 하늘을 만날 수 있을 터이니 무엇이 되든 그곳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은 참 좋을 터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디게 올라가던 건물에 어느 날, Cafe & Bakery  '삼랑' 3월초 오픈이라는 작은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역시 전망 좋은 곳은 많이 이들이 공유해야 하나 봅니다. 카페라고 합니다. 거기에 고소한 빵까지. 서서히 올해의 꽃이 피어오르자 나는 카페의 오픈을 계속 홀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월이 다 가도록 변함없이 닫혀있던 문이 지난 토요일 27일. 비와 바람 속에 제주 올레 6코스를 무작정 걷고 있을 시간에 카페가 그 속살을 드러내 보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발이 아직 닿지 않은 공간에 앉아 딱 지금의 봄 풍광을 '삼랑'에서 누리고 싶었던 욕심이 조금 있었나 봅니다. 아쉽지만 수요일 늦은 출근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아직도 정식 오픈이 아닌가 봅니다. 가오픈 기간이라 합니다. 그래서 음료컵이 모두 일회용입니다. 아쉽습니다.

 

 

영업시작 시간 11시, 마지막 오더 7시 반

 

1층은 입구

2층은 주문하는 곳

3층, 4층 카페

5층 루프탑

 

 

일단 내부가 널찍널찍합니다. 공간의 여백이 많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사방으로 창문이 내어져 있습니다. 풍경을 카페 내부에 담고자 한 듯 보입니다. 건물 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커다란 한그루의 나무가 건물의 심장인 듯 쭉 뻗어 있습니다. 2층은 오래 앉아 작업을 할 수 있을 부드러운 곡선의 테이블이 있고, 낙동강변 쪽으로는 낮은 소파들이 배치되어있습니다. 3층에는 실내와 실외 모두 테이블이 있습니다.   

 

 

 

카페에서 바라보는뷰는 생각대로였습니다. 앞쪽으로 앉으면 낙동강, 뒤쪽으로는 낮은 산아래 철길입니다. 지금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전히 벚꽃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조팝나무 무더기가 군데군데 보입니다.

 

 

날씨가 더워 샷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크루와상 하나를 주문했습니다. 3층 낙동강변이 보이는 곳에 앉았습니다. 아름다운 봄날의 뷰 때문인지 어지럽고 복잡하고 심란했던 마음이 다소 위로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커피는 샷을 추가했는데도 생각보다 부드러웠습니다.

 

 

제주를 다녀온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왜 이다지 마음이 어지러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마음을 실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고 싶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고 싶습니다. 생각이 어지러운 탓인지 카페를 다녀온 뒤 남는 생각은 요기까지 입니다.

 

대학 신입생같이 아직은 먼지 한점 없을 듯한 깨끗한 건물, 이 공간의 시작을 닮은 건강하고 푸릇푸릇한 식물들, 층층이 색깔이 다른 가구들의 배치, 쓸데없는 그림이 없는 여백 많은 공간 그리고 삼랑진의 살랑이는 풍광.

 

가까운 날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날 다시 한번 들러보고 싶은 새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