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요망진 식물집사
이선영 (2021). 요망진 식물집사, 책책.
7월 18일 일요일
어제는 폭염을 핑계로 그저 놀았습니다. 늦은 브런치를 먹고, 선흘에 갔다, 송당리로 가서 놀았습니다. 저녁에는 느긋하게 TV를 봤습니다. SG워너비의 그때 노래를 듣다가 괜히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0시가 되니 호우경보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그럼, 우리 뭘 하지. 내일?"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해가 뜨면, 눈도 같이 뜨입니다. 어제 못한 샤워를 하고 책을 봅니다.
나는 지금 '바그다드의 정원'을 바라봅니다. 새로 지은 건물 뒤로 이곳의 정원사가 몸을 갈아 키운 유럽 수국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며 책을 봅니다.
이 책은 어제 송당리 온실카페 '송당 나무'에서 사 온 책입니다. '요망진 식물 집사'. 정원이나 나무, 꽃들은 언제나 휴식과 평화, 위로를 주었는데 이를 가꾼 정원사는 거기에 몸을 갈아 넣었다고 합니다. 마치 자신의 몸으로 자식을 품고, 다시 그 자식을 키우느라 늘어진 가슴을 지닌 세상의 엄마들처럼요.
'요망진 식물 집사' 이선영 작가(정원사)는 서울 토박이라 합니다. 어쩌다 꽃과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으로 영원한 동반자를 만났고, 서울이란 대도시에서 동시에 3개의 가게를 운영하며 치열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지치고 소진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정원을 갖고 싶어서 가족과 함께 조금 일찍 제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제주에 혼자 출장을 왔을 때 당시 조금씩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때여서 우연히 구글에서 송당 나무를 처음 보고 어렵게 찾아갔었습니다. 민가와 떨어진 외진 곳에 덜렁 있던 어수선한 카페. 화분과 식물이 많아서인지 딱 떨어지게 깔끔한 인상은 전혀 없었습니다. 맑고 싱싱한 공기를 마시며 차 한잔 했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동료들과 다시 방문했던 것이 작년 6월입니다. 온실과 정원을 연결하는 유리문을 활짝 열어두고, 햇살 와랑와랑, 따뜻하고 맑은 공기가 가득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강아지 고양이 어른 그리고 아이들,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그런 정다운 곳이 송당 나무였습니다.
우연히 '최인아 책방'에서 7월 북 토크 일정을 검색하다 책이 출판된 것을 알았습니다. 직접 작가를 만나 사인을 받고 짧은 시간이지만 대화를 나누니, 40대의 젊은(완전 내 기준으로) 정원사의 꽃과 나무, 식물, 동물 등에 대한 마음과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 곁에 언제나 함께인 가족들에 대한 마음도.
그녀의 문장은 평이하면서도 담담하게 가슴에 남는 부분이 많습니다. 요즘 나의 '베란다 꽃'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디안텀'입니다. 마침 아디안텀을 주제로 쓴 글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아디안텀을 보며 그녀는 이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디안텀은 물을 무척 좋아합니다. 물만 잘주면 키우기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식물 중에서 물을 좋아하지만 참을성이 있는 녀석이 있는데, 조금만 물을 안주면 목이 마른 걸 참지 못하고 온몸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자살하는 녀석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디안텀입니다. 그래서 장기간 출장이 잦거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가능한 아디안텀을 키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여행을 오기전 나의 아디안텀을 자유님께 맞긴 것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자유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 사라으로 성숙했을 아디안텀이 그립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보면 잘 맞는 사람만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일하거나 살아야 하는 일이 무수히 많습니다. 맞지 않는 걸 억지로 참거나 고쳐보려 하다간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사람에 대해 너무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합니다. '요망진(제주어로 지혜로운)' 식물집사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백의 마스킹 테이프를 두 개나 붙여봅니다. 안되는 일에 애쓸 나이는 이미 아닙니다. 저는.
그녀가 적어준 대로 그녀 역시 즐겁고 슬기로운 식물생활을 하고, 언제나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제 정원을 돌아보며 집으로 가려는데 작가님의 남편이 가만히 다가와 꽃씨를 주셨습니다. 송당나무라고 적혀있습니다. 아게리덤, 쑥부쟁이, 샤스타데이지, 촛불 맨드라미, 금계국, 추명국, 스케토시아. 낯선 이름도 많습니다. 가을에 파종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나의 베란다에서 잘 될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송당나무' 주인장이 직접 재종하고 말렸다고 쓰여 있습니다. 소중한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송당나무를 지키는 강아지는 이름이 '열매'입니다. 얼굴에 순둥순둥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조카와 나란히 앉혀놓고 사진을 찍습니다. 익숙한 듯 렌즈를 바라봅니다. "열매야. 안녕. 다음에 다시 보자." 인사를 하고 왔습니다.
송당리도 선흘리 처럼 조용하고 참한 제주 중산간마을입니다. 제주 바다도 참 좋지만 나무가 가까이 많은 중산간 마을이 저는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