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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하나의 눈송이

Jeeum 2021. 8. 10. 17:34

제목이 길다.

 

은희경 소설집 (2014).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문학동네.


'세상 모든 사람은 유니크(unique)하다.' 한사람 한 사람 특별한 존재라는 말이다. 대학 때부터 무지무지 많이 들어오던 말이다. 단 하나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고 산다. 비슷하게 생긴 듯 만들어진 듯 하지만 전혀 엉뚱하게 다르다. 우리는 다른 것을 개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정체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사 시험을 쳤다.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어렵더라. 그저 한번 쳐보는 것이 취업이나 진로를 위해 꼭 1급이 필요한 청춘들 앞에 할 말은 아닌줄 안다. 조용히 치고 조용히 나왔다. 근데 너무 어렵더라. 내 눈에는 청춘들이 너무 짠해 보였다. 시험이 목표가 아닌데 그 시험을 통과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청춘들이 그 과정에서 행복할지 모르겠다. 행복했으면 했다.

 

사는 과정에서 우린 너무나 많은 고비를 넘는다. 고비를 넘을 때마다 단단해져 위로 쭉 제대로 뻗어나가는 대나무도 있지만 상처를 받고 힘들기만 했다가 굽어 버리는 나무도 있다. 사춘기를 넘어 설 때도, 대학을 가야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낯선 타국에서 혼자서 살 수밖에 없을 때도, 부모가 이혼을 할 때도, 전쟁을 겪을 때도. 셀 수 없이 많은 고비를 넘고 넘으며 사는 것이 인생인지 모르겠다.

 

"매 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 그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가까스로 그 뿌리를 지탱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건 아닐 테지." 라고 작가는 말한다. 

 

"소영은 유니폼의 블라우스 앞자락을 꼭 붙들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고향인 남쪽 바다에 간 적이 있었다. 바닷물이 모래를 휘감고 멀리로 나갓다가 다시 돌아와 발밑에 그 모래를 토해놓는 것이 가장 신기했다. 바다는 언제까지고 그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자리가 조금씩 밀려나고 있을 뿐 모래는 언제나 되돌아왔다. 그때의 기분과 비슷했다."(98쪽)

 

"엄마는 인생에 대단한 것은 없고 모두가 고독 속에 죽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견디기 쉬워진다고 한다. 아마 그런 식으로 사라의 죽음이라는 목차에다 자신의 고독을 슬쩍 끼워 넣었을 것이다. 죽음같이 센 쪽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앞에 잠시 고독을 내려놓는 것쯤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146쪽)

 

은희경의 소설 속 사람은 다소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을 늘 이성적인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중심을 잡고 객관을 잃지 않고 그렇지 못한 이를 관찰하다보면 삶의 방식은 편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열정은 멀리 있다. 불타는 열정 도한 언제나 의도된 계산 속에 존재한다. 읽고 나면 그저 냉담해진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한다. 더운 여름에 읽기 쉬운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