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김금희 (2018).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김금희의 짧은 소설. 표지의 그림이 본문의 그림들이 좋다. 여행지 어느 곳의 작은 화랑에 소품으로 전시될 될 듯하다. 그림을 그린 이는 '곽명주'. 기억해 두자. 어디선가 만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은 이름마저 수집하는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많은 이름들을 어디에 저장해 두는 것일까. 얼마만큼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일까. 어떤 순간이 오면 어떤 기준으로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윤경'으로 시작해 '현우와 은리'까지 이 책에 담긴 이름만 세면 모두 몇 개일까 싶었다. 세어볼 요량으로 메모를 시작했다가 포기했다.
텅 빈 여백 같았다. 연휴동안 크게 하는 일 없이 시간이 무료했던 탓일까. 문장이 책이 쪽들이 뭔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깊은 곶자왈 숲에서 갑작스러운 비를 만났던 그날처럼. 아무리 숲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한참을 걸어도 끝이 날 것 같지 않는 순간이 계속되어 불안하고 초조했었다. 풀, 나무, 비, 그리고 소리(sound).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기약없이 걷다가 문득 불안하고 막막했었다. 나무가 너무 많고 풀이 너무 많으면 모든 것에 일일이 하나하나 관심을 갖는 것은 애초에 무리여서 그저 하나의 낱말로 숲, 나무라고 명명하는 것처럼. 인물이 너무 많아서 소소한 사건이 아주 많아서 그래도 인물을 소중하게 헤아려보려다 포기하고, 문장으로 드러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려다 순간 고장 난 스위치가 그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텅 빈 여백을 미로 공원처럼 헤매다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아침 독서의 적막을 깨우는 것이 내 영혼의 소리가 아니고 흐르는 물소리여서 소름이 살짝 돋았다. 아직도 멍한 영혼은 문자의 미로를 헤매다 지쳐 다시 잠이 들고자 했다. 백색소음같은 물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왠지 오히려 사방은 더 조용해졌다. 무한할 것 같은 적막이 싫어 TV를 틀어 '얀 리치에츠키'의 피아노 소리를 배경으로 마지막까지 책을 읽었다.
마지막 단편은 현우와 은리의 짧은 사랑이었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화자가 되어 상대의 말을 끝내버리는 버릇이 있는 현우는 그 나쁜 버릇에 대해 유일에게 위로를 준 은리를 사랑한다.
그런 현우의 버릇을 말이 말을 마중 나간다고 정리해준 사람은 대학원을 같이 다녔던 은리였다. "말이 혼자 나오면 외로울까 봐 네가 나가 주는 거 아냐? 마중 나가서 손잡고 여기로 와라, 끌어주는 것 같은데?" 현우는 정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위로하고 생각했다. 이제는 대화하는 데 그리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244쪽, 성탄인사).
언어치료사라는 직업 의식 때문이었을까 이 문장에서 완전히 잠이 깼다. 대화의 주고받음을 방해하는 '중첩' 현상을 작가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영원히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