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햇살이 여름과 다를 바 없다. 8시경 늦은 아침을 먹고, 9시쯤 밭으로 나갔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들과 가을빛의 따끈따끈함을 더불어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근데 너무 뜨겁다. 무와 배추에 흙을 북돋아주었다. 다음 주에 심을 양파 밭을 준비했다. 지저분한 풀을 뽑아주고, 더벅머리 당근밭을 솎아주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썼지만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머리가 핑 돈다. 물을 마시고 준비해온 사과도 먹었다. 그러나 힘들기는 매양 마찬가지다. 서늘한 오후를 기약하고 귀가하기로 했다.
매실나무 아래 앉아있던 주인장이 말을 건다. 뭐를 했냐고. 풀을 뽑았다고 했다. 너무 더워 가야겠다고 했다. 감을 주셨다. 말랑말랑한 빛깔이 잘 익은 감귤을 닮았다(감이 귤을 닮았다고 하면 화를 내려나!!).
혹시 '흑감'을 아느냐고 물었다. 열매가 달릴 때는 똑같은 초록빛인데 보통의 감이 붉게 물드는 동안 흑감은 까맣게 익어간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나무를 보니 정말 감이 검어지고 있었다. 껍질은 새까맣지만 속은 그냥 감이라고 한다. 참으로 신기한 세계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흑감 혹은 먹감이라고도 부른다. 맛없을 듯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 맛이 궁금하다.
그러면서 내려가는 나를 붙잡아 또다시 토실토실 밤알 몇 개와 감을 주셨다. 아무데나 두면 속이 익어 금방 맛있을 거라고 했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커다란 감. 밭일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낯설기만 한데, 틈이 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밭으로 오는 까닭은 새로운 식물의 세계를 만나게 되기 때문인가. 흑감이라니. 만날 때마다 챙겨주는 넉넉한 마음을 안고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