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68.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Jeeum 2021. 12. 15. 21:20

은모든(2020).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민음사.

 

당일치기 서울 출장에 들고 가기 딱 좋을 가벼운 크기였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제목도 너무 좋지 않은가. 외롭다거나 적막하다거나 세상의 중심까지는 아니지만 주류에서 벗어나 불안하다고 느껴질 때, 누군가 '너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갑자기 세상이 밝고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싶은 그런 제목 아닌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27권째. 작가는 은모든. 본명인지 필명인지 궁금해지는 이름이다. 사진을 보니 화사한 나이를  건너는 듯. 젊고 아름답다. 왠지 소설의 흐름이 그녀를 닮아있을 것 같다. 표지의 그림은 '김선정' 꿈꾸는 대로. 초록과 꽃들이 가득가득한 공간에 푹신한 소파, 보들보들한 러그, 서재 책상 그리고 작은 테이블. 이 공간에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차림으로 맘껏 뒹구는 젊은 여성. 이것이 청춘이 꿈꾸는 공간이고 시간이라고?? 그녀의 소설은 이 그림을 닮아 있을 것이다 싶었다.

 

 

과외 선생님 경진. 생물 전공 이공계 졸업생. 엄마의 성화에 몇 년 공무원 준비를 하다 과외를 업으로 하며 열렬하게 살고 있다. 몇 년 만에 겨우 틈을 비집고 만난 3일간의 휴가. 휴가 동안 그녀는 난데없이 사람들이 말을 걸기 시작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낯선 길을 걷다 가야 할 길을 확인하려고 가볍게 말을 거는 것조차 드물어진 세상에 자신의 삶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계속되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하지만 말을 거는 사람보다 그 말을 흔들림 없이 계속 들어주는 경진. 화자가 되는 것도 어렵지만 청자가 되는 일. 잘 들어주는 청자가 되는 일. 화자의 말에 파장을 맞추어주는 청자가 되는 일은 매우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 청자의 역할을 하며 경진은 엄마의 딸로, 언니의 동생으로, 웅과 은주의 친구로, 해미의 선생님으로서의 원래 자기 자리에서 필요한 균형을 제대로 잡아간다. 

 

맘껏 쉬는 시간이 일에 지친 경진에게 가장 절실했던 시간이었다면, 그 시간 동안 타인의 삶을 듣는 행위를 통해 흡수하고 물결을 타는 경험은 느리지만 경진의 성장을 자극한다. '성장'의 모습은 편안하게 돌아가야 할 자기 자리로 여유롭게 착지하게 만든다. 현재의 서울에서 불안하게 시작된 경진의 걸음은 자신의 고향이자 엄마와 친구 웅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전주를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서 끝이 난다. 그녀의 소설은 '김혼비'가 '햇빛 따뜻한 날 강변을 산책할 때의 그것과 무척 닮아있다.' 고 지적한 것처럼 '산책'을 닮아 있다. 그래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닫을 수 있는 소설이다. 

 

나의 자리에서 시작해 서울을 걸어 돌아 나오는 당일치기 출장 동안 출렁이는 기차의 소음을 친구 삼아 가벼운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장이 담백하고 홀가분해서 그녀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