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말하다
김영하 산문집 (2015). 말하다, 문학동네.
무의식처럼 일어나 책을 마주 대한다. 가끔 이유 없이 더욱 피곤하고 다시 잠이 오는 날이 있다. 억지로 활자를 들여다본다. 괜한 문장에 잠이 달아나는 순간을 만난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인간은 타인의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진화과정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려 한다면 너무 힘들고 피곤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로 뛰어간다면 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일단 같이 뛰어가면 편합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라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뭔가를 행 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입니다.
책을 읽는 중에 2021년이 2022년 1월 1일로 바뀌었다. 달력의 숫자를 바꾸는 데 가슴이 쿵쾅거렸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이 심장을 뛰게 했다.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래는 우리 모두가 다중의 정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글고 그 정체성 중의 하나는 예술가였으면 좋겠습니다. (중략) 택시기사이면서 연극배우, 은행원이면서 화가, 골프선수이면서 작가인 세상이 제가 그리는 미래입니다.
Just do it.
김영하에게 서재란 오래된 목소리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에 접속하는, 일상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타자를 대면하는 공간입니다. 사실 우리가 낯선 것을 가장 안전하게 만나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중략) 그럼으로써 서재는 자아가 확장해가는 공간인데, 자기와는 생각이 다른, 자기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또는 자기는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욕망들을 실현하는,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책 속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통해서 자아가 확장되는 거죠. 작은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거대해질 수 있는 확장성이 있습니다.
최고의 소설이란?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 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걸린 데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하여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떤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기법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순간에 인간이 고요하게 자기 서재, 아무도 침범해오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
나, 고유한 나 누구에게도 털리지 않는 내면을 가진 나늘 만들고 지키는 것으로서 독서, 그렇게 단단하고 고유한 내면을 가진 존재들, 자기 세계를 가진 이들이 타인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세계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조용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 소박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자기 침대에 부워 어제 읽던 책을 이어서 읽는 삶. 자기 서재와 마음속에서만큼은 아무도 못 말리는 정신적 바람둥이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세상이 제가 꿈구는 이상적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