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권리, 2022-26
문학평론가 정여울.
그녀는 마음을 챙기기 위한 기술로서 공부가 필요했다고 한다. 시간표도 선생님도 없는 자신만의 작은 마음학교에서 스스로 배우고 익히며 자아를 찾아야 했다고 했다. 진정한 공부는 문제풀이가 아니라 헤매고 방황해야 하지만 끝내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격증이나 점수를 따시 위한 공부가 아니라 역사와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미치도록 좋다는 그녀를 따라 348쪽으로 이루어진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는 동안 <인간의 조건>, <창조성의 힘>, <인생의 품격> <분노할 권리> <정의와 정의>, <공감의 글쓰기>, <가치의 창조>에 대해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으면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보라"고 한다. 익숙한 길이 낯선 풍경을 펼쳐 놓을 때 우리는 새로운 시작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그녀...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관찰의 인문학>에서 새로움을.
" 역사의 가장 끔찍한 비극은 나쁜 사람들의 짜증나는 아우성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의 오싹한 침묵 때문에 발생한다"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에서 지금 나의 현실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배웠다.
"식물, 나무, 꽃, 풀을 볼 때 내 마음 속에도 그들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 문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약한 것들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을 제멋대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힘을 비축할 줄 압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비축해둔 힘을 진정으로 필요할 때 자신의 힘을 필요한 이에게 나눠줍니다" 말에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정여울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진정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오직 자연만을 벗 삼아 홀로 설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아니라고 했다.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 그렇다. 지금의 내 삶이 아무리 힘들다고 도망을 간다 한들 거기에도 삶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도망간 거기에서 만나는 삶이 더욱 힘들지도 모른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 "이 요란한 힐링 열풍에는 뭔가 불편한 광기가 스며 있습니다. 그 불편함의 정체는 뭘까요? 아픔에 대한 성급한 알레르기 반응 아닐까요?" 그래. 아픔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사는 동안 언제 아프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아팠지만 살 가치가 있기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 아닌가. 나는 완벽하게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사람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