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극장
2022-52
홍예진 (2021). 소나무극장, 플앤니나.
왜 이 책을 빌려왔는지 모른다. 그저 신착코너에서 작가의 이름이 새롭고, 장편소설이고, 양장본의 표지가 마음에 들었을 뿐이었다. 일상의 삶에서 아는 정보가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지만, 독서에서는 기대감이다. 가끔 우연이 멋진 작가와 글을 만나게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나무극장에는 남모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장편이지만 문장의 양이 엄청나게 많진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고, 등장인물이 많아 그리 읽기 쉽진 않았다(이젠 관계도를 이해하려면 메모를 해야 한다ㅠㅠ). 1929년생 연극배우 차인석, 소나무극장의 설립자 조수찬 그리고 두 사람의 지극한 사랑의 대상인 영임. 이들의 자녀와 손녀 손자들 세대까지 삼대에 걸친 서사가 시점을 바꿔가며 서술되어 짧은 클립이어도 그저 술술 읽히진 않았다. 때론 인물의 행위나 말에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아 앞으로 돌아가 다시 찾아 읽다 보니 시간이 더욱 걸렸다.
파인아트센터(구 소나무극장)에 유령으로 존재하며 연극을 하는 인석, 한국전쟁 때 애인 영임을 남긴 채 형(인우)을 위해 월북했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총을 맞고 죽었다. 부잣집 아들인 조수찬은 친구와의 약속대로 소나무 극장을 설립하고 그 자녀들이 파인아트센터로 바뀐 소나무극장을 운영한다. 인석을 잊지 못한 채 새로운 가정을 꾸린 영임도 어느 날 손자 상원을 통해 인석의 유품인 시계를 만난다. 인석은 "이루지 못한 것과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이에요."라고 말하며 소나무 극장의 유령으로 맴돌고 결국 영임을 만난다. 그리하여 인석의 영혼은 드디어 먼 길을 간다.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무대의 불이 꺼지고 막이 내리면 예술이 주는 감동을 가슴에 지닌 채 객석의 사람들은 모두 떠난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도 떠나지 못하고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나무극장이 견뎌온 세월.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을 거치고 몇 개의 정권을 지나온 세월. 소나무 극장의 이야기도 세월과 더불어 정치와 역사에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떠나는 곳이 되었다. 시간의 그늘만큼 모인 사람들의 수만큼 숨겨진 이야기가 넘치는 곳. 그곳이 소나무 극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