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춘천에 살기로 했다!!???
일주일 간의 춘천 살이. 춘천은 분지이다. '대프리카'로 알려진 대구에서 자란 내가 춘천을 덥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려나!! 하여간 춘천의 여름도 예사롭지는 않았다. 춘천 살이 동안 머문 '춘천 일기' 스테이는 나름 좋았지만 둘이 쾌적하게 일주일을 머물기에는 좁아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춘천의 공기가 물기 가득 먹으며 밤새 땅을 향해 아래로만 흐른 탓일까. 축축한 빨래에 직사광선이 내비치면 젖은 빨래가 금새 말라야 하는데 오히려 목덜미를 타고 빗물 한 자락 주욱 흘러내려 방금 입은 옷이 금세 젖어 버렸다. 그만큼 더웠다는 얘기다. 내게 있어 여름날의 여행에선 '밤길 산책'이 나름의 즐거움 이건만 한 줄기 바람도 숨바꼭질을 하는 듯 숨어버린 듯했다. 얇은 마스크도 버거울 만큼 숨이 턱턱 차올랐다. 산책이 아니라 땀으로 하는 샤워라고나 할까.
그러나 춘천은 낙낙했다. 조금은 차분하고 느려 느긋하게 시간 여행을 하고픈 내게는 적절한 크기의 소도시였다. 걸어도 차를 타고 가도 부담이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런 춘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래된 언덕이 있다. '육림고개'라 불렀다. 1970년대의 춘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곳이다. '춘천시 중앙로 77번길'을 '육림극장' 쪽에서 바라본다. 옛 사진을 보면 이 언덕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다. 무언가를 사고 판다. 당시의 일상일 것이다. 춘천의 도심이 넓어지며 그 번화함은 점점 소멸되고 있다. 하지만 육림고개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살고 있다. 바람 따라 시절에 따라오고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길을 사랑하여 그곳에 머물고 싶은 이들이 있었다. 오래된 마을이 늘 그러하듯 육림고개를 끼고 있는 골목길은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다. 거기 높은 고개 마루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다. '수아 마노'
수아 마노의 오너 세프 '백동현'. 그의 책 '우린 춘천에 가기로 했다.'를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장소이다. 어두운 길에서 육림극장 가까이에서 육림고개를 올려다보면 유난히 밝은 두 개의 불빛이 보인다. 'SUA MANO'라는 글자를 비추는...... 수아 마노는 '그의 손'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후후!!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얇은 책에는 젊은 요리사의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열정,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 그리고 춘천에 머물기로 한 그들의 선택, 수아 마노에서 자신이 꿈꾸는 요리를 만들어 자신의 서사를 대접하겠다는 얘기 등이 적혀 있었다. 당연히 그의 요리가 궁금하다. 수요일 저녁 7시로 예약했다. '첫 서재'에 들렀다 가는 길이어서 마음이 다소 무거웠다.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이대로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갑자기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계단길을 따라 올라갔다. 높이 솟은 곳에 낡은 대문 넘어 오래된 주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낡은 양옥은 몇 개의 식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테이블은 모두 일곱(??). '금강로'의 신한은행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반대편 주방에는 책에서 본 그와 또 한 명의 셰프가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언제나 보기에 참 좋다.
나는 그의 요리를 다양하게 먹고 싶었다. '가지 라쟈냐'가 가장 궁금했지만 셰프 추천 모둠 요리 'Piatti Misti'를 주문하고 조카는 '감자뇨끼'를 주문했다. 차가 없는 덕분에 레드 와인도 한잔씩 주문했다. 천천히 느긋하게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 '트라토리아'를 즐기면 된다.
오랜만에 마신 와인 한잔에 기분이 낙낙해졌다. 두 접시에 3가지의 요리가 조금씩 나오는 모둠요리는 깔끔했다. '델모니코스' 처럼 화려하고 푸짐하진 않았으나 식사로 적당한 양이었고, 와인에 곁들이는 먹기에 적절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이탈리아 음식을 춘천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들었다는 것이 좋았다. 소박하지만 기분 좋아지는 맛이다. 감자뇨끼는 생각보다 많이 맛있었다. 때문에 역시 일품요리를 주문했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뒤에 들기는 했다. 다시 온다면 하나씩 요리를 맛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셰프의 얘기를 직접 듣지 않고 음식만으로 하고픈 얘기를 짐작하기엔 나의 미각이 부족했다. 맛으로 못다 한 그의 얘기를 글로 말로 좀 더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춘천에 살아야 하나^^ 아직 춘천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인가. 아직 진하게 춘천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되고 기회가 되면 다시 춘천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