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um 2022. 9. 4. 19:28

2022-62

 

문지혁(2020). 초급 한국어, 민음사.

 

소설을 자주 읽다보면 그저 술술 스토리를 따라 읽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을 따라 떠다니기도 하고,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이 미로를 헤매기도 한다. 가끔은 작가의 기발한 생각과 구성으로 소설을 통해 사람에 대해 혹은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얻기도 한다.

 

문지혁 작가의 짧은 소설 <초급 한국어>는 작가의 경험과 작가의 상상이 적절히 섞여 읽기 좋았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글의 모습이, 외국어로서 한글을 가르치는 관점에서의 한글에 대한 설명은 아주 재밌고 신선했다. 외국어로서 한글을  가르치는 효율적인 교수학습법이 있지 않을까 싶고, 한국어 교사들은 우리도 알기 어려운 그것들을 어떻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지 궁금했다.

 

소설가의 꿈을 꾸는 지혁이 유학을 마치고 간신히 잡은 한국어 강사자리. 1학기의 강의를 해나가며 변화해나가는 외국인들의 한국어. 지혁에서 한글을 배우는 초급반 외국인들의 한국어에서, 점점 변화해 가는 그들의 언어에서 언제나 처음인 인생을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태어나서 매 순간 처음 겪는 일들로 서툰 실수를 반복하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우리들. 어느 나이대이든 우리는 초급 수준의 삶의 실력으로 아둥바둥 인생의 시간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조심 걷든, 용감하게 뚜벅뚜벅 걷든, 낙하산을 타고 뛰어가거나 날아가든 걸어가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면서. 누구라도 건너뛸 수 없는 시간들. 초급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성장할 수는 있는건지.

 

초급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을 가르치는 지혁의 모습에서 어제의 그리고 내일의 내가 보인다. 외딴 섬처럼 그려지지만 지혁은 외롭지 않다. 더이상 부를 수 있는 엄마는 없어도 언제나 제때 타이밍 못맞추더라도 번번히 깨지고 터지더라도 내가 걸어가야 할 길에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많았으면 좋겠다. 괜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중 30번째 작품. 문지혁 작가의 많은 작품을 기대한다. 누군가의 평가에 움츠려들지 말고 용감하고 담담하게 많은 문장을 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