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나의 언어

태풍 '힌남노'

Jeeum 2022. 9. 7. 11:25

2022년 9월 1일. 며칠 전부터 계속 태풍 '힌남노' 얘기가 언론을 통해 들려온다. 금방이라도 엄청난 태풍이 밀어닥치니 모두 조심하라고. 1일 밤 제주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기로 했던 조카마저도 친구 가족들의 걱정으로 수수료 22,000원(너무 크다.)을 물고 오후 2시 비행기로 돌아왔다. 원래 자신이 타아할 제주발 마지막 티웨이 항공기가 캄캄해진 동변동 하늘 위로 모습을 보이자  땅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억울한 듯 속상해했다.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예상 일자는 9월 6일 새벽. 방송사마다 미리부터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어대니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에 살짝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보도하는 언론의 의도는 예방이고 조심하라는 것인지 모를 바 아니지만 그 소식에 영향을 받아 스케쥴이 바뀌는 시민들만 어리석은건지 애매해서 판단이 어렵다.


9월 5일 월요일 오후, 태풍이 직접 지나간다는 경남 김해에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학교로부터 화요일 하루 전면 휴강한다는 공지가 왔다. 흰남노라는 특이한 이름의 태풍이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을 분명한가 보다.  다들 조심하자. 비가 좀더 심해지자 나도 일찍 퇴근했다. 북쪽으로 올라오자 대구는 아직 조용했다. 


월요일 밤. 비가 내렸다. 태풍의 영향권이란다. 조심조심. 비상이다. 방송사마다 재난 방송이 끝도 없이 계속된다. 이미 겪었던 모진 태풍과 비교해서 더욱더 모질것이라 겁을 줬다. 바람은 아직 잔잔했다. 동화천 산책로는 이미 통행할 수 없다. 쓰레기조차 버리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바깥 날씨가 궁금해서 비옷을 입고 크게 아파트를 한 바퀴 걸었다. 내리는 비는 태풍이라고 하기보다 아직은 가을을 재촉하는 기름진 비와 같았다. 아니다. 조심해야 한다. 

 

밤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날씨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다. 태풍전야인가. 


이른 새벽 거제도에 태풍이 상륙했다고 한다. 다들 괜찮은가? 대구는 여전히 비가 많이 내릴 뿐 큰 변화가 없다. 아침이 되자 바람이 거세졌다. 베란다 창문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창문 틈에 빳빳한 종이를 끼워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 태풍의 위력에 베란다 창문이라도 깨지면 안 되니까.

 

정오가 가까울 무렵 태풍이 울산을 거쳐 동해안으로 빠져나갔다 했다. 웬걸. 포항에서 난리가 났다. 오후가 되자 대구의 하늘은 언제 비바람이 쳤는지 모를 정도로 해맑게 모습이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뭇잎이 다소 어지러이 뒹굴 뿐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엄청난 위력의 태풍이었지만 우리들이 예방을 잘 했기 때문일까. 어쨰튼 다행이다. 갑작스러운 휴강으로 난 틈을 이용해 잊고 있던 볼일을 봤다. 오후 늦게 텃밭으로 갔다.

 

OMG. 태풍의 흔적은 거기에 모두 모여 있었다. 과실나무가 넘어지고, 웃자란 식물들이 누워있었다. 잘 자라고 있던 가지, 고추, 깻잎 나무들이 모두 넘어졌다. 나의 텃밭 입구에서 언제나 그늘이 되어주던 큰 호두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졌다. 쓰러진 나뭇가지에 대파와 곰보배추가 깔려버렸다.

 

바람이 엄청 불었다는 것을 텃밭을 보며 알았다. 땅의 힘은 대단해서 그 많은 비를 어느새 소화해 피부가 촉촉해져 있었다. 안전한 아파트 실내에서 요란스러운 방송사의 보도에 시큰둥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작은 텃밭이 이럴 지경인데 산과 들, 밭에 맨몸으로 비바람을 맞았던 자연의 상처가 오죽 클까 싶어 경솔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저지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나갔다 실종된 사람들의 얘기에도 몸과 마음이 움츠러 들었다. 실종이 아니라 무사히 귀환하길 바라본다. 부산과 울산에 미칠 피해를 걱정했더니 더욱 북쪽에 있는 포항에 너무 큰 상처가 났다. 

 

자연 앞에 겸손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세상이 뒤집어질 듯 보도하는 방송사의 호들갑은 호들갑이 아니라 겸손하라는 경고였음을 이제 알았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재난이 다가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조심하는 일 밖에 없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거대한 강력 태풍의 반경이 400킬로를 넘는다 하니 태풍의 중심이 거제도에 다가오면 서울과 북한 땅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생각해보면 실로 엄청난 일이다. 거대한 자연의 몸체가 돌면서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니 어디에 얼마큼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포항의 무엇과 태풍의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만나 그 지경을 만드는지..... 실로 자연의 시간이란 몸서리치도록 알 수 없어 더욱 무섭다. 딱 한번의 달이 떠서 지는 시간 동안, 인간의 생과 사가 갈려버렸다. 차오르는 물 속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답답하다. 

 

9월 7일 수요일. 하늘이 너무 맑고 햇살이 따갑다. 태풍이 없었다면 맑은 가을 햇살이라고 섰을지도 모른다. 맑은 햇살을 마주하며 웃는 사람도 우는 사람도 있다. 우는 사람들이 많이 없기를 소심하게 바랐다. 언제나 하늘을 보면 기분이 맑아지는데 오늘은 그렇지 못하다. 2022년의 가을은 이렇게 잔인하게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