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수다
오영은 글&그림(2020). 고양이와 수다, 위즈덤하우스.
2022-72
경주 그림책 책방 '소소밀밀'의 무열왕릉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틈을 내어 짧은 가을 여행으로 경주에 갔다. 소소밀밀에 들렀다. 무열왕릉이 있는 동네 서악동. 경주에서도 변두리에 속해 한적한 곳이다.
낡은 한옥을 구입해 리모델링하는데 힘들었다고 한다. 마치 새로 지은 듯 참하고 아늑한 한옥 책방과 카페 '소소밀밀' 무열왕릉점. 여기서 오영은의 그림 에세이를 샀다.
어쩌면 우정은 다정한 농담이라는 부제 처럼. 그림도 선도 얘기도 소소하지만 정확하고 다정하다. 저자가 말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 하고픈 얘기가 있었다고.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은데 너무 늦은 시간 이어 망설이다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고. 그 순간 고양이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가(홍당무)는 야옹이라는 고양이 친구를 만난다. 당무는 야옹이와 함께 사계절을 친구로 보낸다. 둘은 편지를 쓰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함께 차도 마시며 수다를 떤다. 수다는 주로 당무가 하고 야옹이가 대체로 들어주는 편이다. 그냥 봐도 야옹이가 훨씬 어른이다. 야옹이와 긴 시간을 함께하는 당무는 친구와 나누는 농담 같은 수다 덕분에 조금씩 성장한다. 마치 우리가 한살한살 나이를 먹는 것처럼.
그림으로 표현된 에피소드들에 깊게 젖어들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조카와 같은 청춘들에게는 모두 자신들의 얘기 같아서 어쩌면 깊은 울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영은 그림은 참 좋았다. 어쩌면 이렇게 참한 고양이가 있을 수 있는지. 야옹이의 표정, 작가 당무 표정, 고양이의 움직임이 마치 우리의 그것처럼 얼마나 친숙하고 리얼한지. 비교적 넓은 지면을 심플하게 차지한 선과 선들이 모여 만든 공간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인물, 그리고 나머지 더욱 넓은 여백에서 나는 평화, 안정과 안녕감을 느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여백이 많았으면 참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태원의 핼러윈 파티는 153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새벽녁 149명이라는 숫자를 보고 순식간에 내려간 체온. 놀라서 각성해버린 뇌. 세상은 잔인하게 붉은 가을로 물들어 가는데 아까운 생명들을 저버린 광난의 시간들. 가슴 아프고 불안한 10월 30일.
나처럼 놀라고 불안한 분들이 있다면 티비 그만 보고, 이러한 그림 에세이를 한번 읽어 보면 어떨까 싶다. 우선 나도 정신을 차리고 마음의 평화를 다시 찾아야 하니까. 그리고 고개 숙여 아쉽게 세상을 떠난 그들을 위한 진정한 묵념을 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