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um 2022. 11. 23. 17:31

김겨울(2022). 아무튼, 피아노, 제철소.

 

2022-77

 

피아노가 좋다. 어릴 적 쳤던 피아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나이가 들어 다시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다. 쉽지 않다. 레슨을 받기 시작한 지 거의 십 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악보 없이는 제대로 칠 수 있는 곡이 없다. 애는 쓰지만 기억하는 것도 연주하는 것도 여전히 서툴다. 욕심만 가득하지 연습을 제대로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시리즈 목록에서 '아무튼, 피아노'를 발견하고 바로 주문했다. 저자 '김겨울'은 유튜브 '겨울서점'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독서가이며, 영상으로 는 리뷰 또한 특색 있었다. 여러 권의 저서를 가진 작가이기도 하고, 알고 보니 노래를 하고 곡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피아노를 사랑한다니. 무슨 얘기가 담겼을지 자뭇 궁금했다.

 

책을 읽으며 그녀가 아주 높은 수준의 음악적 재능을 지닌 연주자이며 음악에 대한 지식이 깊은 사람임을 알았다. 그만큼 피아노나 음악에 대한 몰입도나 탐구력이 큰 사람이었다. 소리에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으며, 그녀의 마음과 정신을 피아노의 소리가 어떻게 지배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엄청난 집중을 하는 청년이었다. 

 

독서를 마친 지금 나는 강한 질투를 느낀다. 어머! 얜 대체 뭐냐? 라고 웅얼거리고 있다. 다재다능함에 성취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를 갖고 있어 성취도가 높은 그녀. 그런 그녀에 비해 나이 들어 소소한 곡하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엄청 못난 인간처럼 느끼고 있다. 그래서일까. 책을 다 읽고도 서가로 정리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채 벌써 몇 날 며칠을 들고 다니고 있다.

 

책을 읽을 때는 특히 수필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는 중심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삶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이기 때문에 그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거나 쓸데없는 동경으로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건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것과는 다르다. 산문집을 읽는 시간은 언어를 통해 다른 이를 일상이나 생각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잠시 나를 비추어 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책은 어째튼 강렬했다.  순간적이나마 저자에게 강렬한 질투심을 느꼈던 까닭이 생경하여 아직도 책을 다 읽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일출 전 탔던 제주행 비행기에 놓여 있던 한국공항공사 매거진 'AIRPORT FOCUS' 299호에 하필 김겨울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좋아하는 일의 경계를 넓혀가며 '나'를 여행하는 북튜버 김겨울. 짧은 머리에 밤톨 같은 그녀의 작은 얼굴이 매우 당당하고 땐땐해보였다. 주어진 일에 노력하고, 어떤 일을 하든 일관성을 유지하려 애쓴다는 그녀의 말에 가방에 지니고 있던 그녀의 책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다부짐이 느껴지는 그녀. 피아노에 재능을 가졌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어린 시절 피아노를 계속하지 못한 진한 아쉬움을 가졌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고 스스로 다시 피아노를 자신의 것을 만들었다. 이제와서 새삼 연주자로 살 수 없다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아마추어가 아닌 경지의 피아노 소리를 즐기고, 다양한 음악가의 연주를 즐기고 열렬하게 탐구한다. 그리고 음악과 책에 대한 얘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삶을 산다.

 

12월 18일, 레슨 선생님의 휘하에서 나이를 무릎쓰고 피아노를 배우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다섯 명의 중년과 노년의 여성이 작은 연주회를 하기로 했다. 연주회라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 집에 모여 같은 선생님을 중심으로 피아노를 치는 시간을 즐겨보자는 시도였다. 그러나 타인에게 내 연주를 들려주려면 적어도 모양새는 갖추어야 한다. 곡을 정하고 다른 때보다 열심히(?) 외우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바쁜 일과를 쪼개 쪽 시간을 내어 연습한다. 늦은 시간에 피아노를 칠 수 없으니 저녁이 있는 삶을 핑계로 일찍 퇴근을 하고 연습한다. 하지만 어렵다.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그녀가 지적한다. '그러나 아마추어들은 대개 자신의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틀린 음을 짚지 않기 위해, 박자가 어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떨며 연주한다. 엉망진창으로 틀리는, 한없이 느린 자신의 연주를 견뎌야 한다. 이때의 연주자는 한사람이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능숙해져도 음악을 듣는 나를 분리시키지 않는 한 연주자는 영원히 한 사람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에게 몰두하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운 사람. 혹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어떤 초조함을 읽어낼 수도 있고, 귀여움이나 대견함을 느낄 수도 있다' 

 

과연 나는 귀여움이나 대견함 정도라도 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