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Jeeum 2022. 11. 30. 10:23

김남희 (2021).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문학동네.

 

2022-78

 

30여 년간 뼛속 깊숙이 유목민으로 살아온 여행작가. 김남희의 코로나 극복기.

 

저자는 20대부터 여행했다. 고향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스스로 낯선 곳을 떠돌며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자신의 집에서 편히 뒹굴거리거나 한가해 본 적이 드물었다. 급작스레 찾아온 코로나는 방랑객인 그녀의 발목을 묶어 버렸다. 여행을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없었다. 돈은 여행을 위해 필요했으며, 여행을 하며 겪은 자신의 얘기를 글로 쓰고 살았다. 강연도 마찬가지이다. 평생 여분의 돈을 벌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국내에 발이 꽁꽁 묶였다.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먹고 살일이 막막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칠일은 없다고 했던가. 그녀에게는 오랜 시간동안 여행하며 글을 쓰는 작업을 통해 맺어진 다양한 인연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삶을 이해했다. 사정을 구구절절 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기꺼이 내주었다. 코로나가 준 위기 동안 그녀는 인연들의 호의로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색깔대로 살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그녀의 삶을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

 

김남희는 가만있지 못하는 여성이다. 용감한 여성임에 분명하다. 여행과 강연을 못하는 동안에도 여성 전용 방과후 산책단을 구성해 짧은 국내 여행을 하며 사람들과 함께 했다. 비록 전셋집이 지면 숲이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 에어비엔비 호스트가 되었다. 그녀의 집에는 그녀를 닮은 사람들이 머물다 갔다. 그것도 인연으로 이어지고 인연은 호의로 확장되었다.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여전히 뭔가를 만들고, 관계를 이루며, 자신이 경험하며 얻은 것들을 나누고 산다.  

 

혼자서 거친 야생을 여행하는 여성 여행가라는 낱말에는 남성성이 떠오른다. 편견이지만 그런 이미지가 먼저 다가온다. 그러나 그녀는 천상 여성이다. 자신의 독립된 삶을 위해 이혼을 선택하지만 고민하고 갈등한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낯선 사람을 쉽게 사귀지 못한다. 감성이 너무 섬세하여 작은 것에 감동하고 힘들 때는 혼자 울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칭얼거리고 언니나 전남친에게 업히기도 한다.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녀는 중심이 잡혀있다.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결국 자신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선택한다. 그 선택은 가끔 엉뚱하지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든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런 사람들의 호의를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의 소중함을 잘 알고 지키려 한다. 그들에게 나눠줄 것이 있으면 기꺼이 나눈다. 그래서일까. 밖으로만 떠도는 그녀는 외롭다고 징징거려도 언제나 제자리로 잘 돌아온다.  

 

심지가 잘 잡힌 삶을 사는 그녀를 응원한다. 가능한 오래도록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길 바란다. 나이가 들어도 많이 외롭지않고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더욱 많이 경험하고 성장하길 바란다. 많은 청년들에게 말을 걸고 아픈 청년들을 보듬는 글로벌 리더로 오래 활동하길 바란다.

 

맨 마지막 글에서 눈물이 났다. 아미고 포르투갈을 걸으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는 그녀를 상상했다. "길위에서 아빠를 부르고는 해. 신실한 사람들이 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마음으로 나는 아빠를 불러. 사는 일이 새삼 만만치 않아서 어깨가 처지는 날에도, 모처럼 좋은 일이 생겨 발걸음이 가벼운 날에도,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쓸쓸한 밤에도, 나는 하늘을 보며 아빠를 불러. 아빠 나를 지며보고 있는 거지? 그렇게 물으면서"

 

나도 그랬다. 엄마가 가시고 두 해가 지나는 동안 나도 길위에서 언제나 엄마를 불렀다. 그러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혼자일 땐 대답 없는 엄마를 향해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러면서 일상을 찾았고 중심을 잡았다. 괜히 그녀가 가깝게 느껴졌다. 

 

여행을 하는 것,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것 또한 누구에게나 외롭고 힘든 여정이다. 항상 즐거운 사람도 없고,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도, 절절하게 울고 싶을 때도 항상 혼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누군가의 존재에 기대고, 의지하며 일어서고 다시 걷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김남희의 문장을 읽는 동안 당연한 이런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이런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그녀를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