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um 2022. 12. 15. 23:59

지난 주말, 직접 운전을 해서 1박 2일로 춘천을 다녀왔다. 토요일 오전 9시경에서 북대구를 출발해 다음 날 저녁 8시에 북대구 IC를 통해 귀향했다.

 

여행의 목적은 작가 전보람, 예명 핀든아트 선생님의 첫 개인전 <여행기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우연한 기회에 작가님의 클래스에 참여했고, 클래스를 수강하면서 그녀의 그림에 관심이 높아졌고,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에 지난 여름 춘천여행을 강행했다. 춘천에 머무는 동안 두 번의 짧은 클래스에 참여했다. 가까이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지만 멀리 있기에 그림움도 커지나보다. 따지고 보면 엄청 가까운 사이도 아니지만 그녀가 가는 길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덕분에 춘천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설레임도 있었다.

 

 

여행을 기록하는 방법에는 많은 것이 있다. 부족하지만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첨부해 정리해 둔다. 오랜동안 나는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해왔다. 그런 생각의 끝에서 여행기록을 하는 핀든을 만났고, 그녀가 아는 그림의 즐거움은 아주 조금씩 내게로 이동하고 있다.

 

 

12월의 춘천은 역시 추웠다. 상상마당에는 <춘춘폭폭>이라는 이름의 문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얼결에 참여했다. 춘천에 대한 퀴즈도 풀고 춘천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아직 코로나가 기승이지만 사람의 거리는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달하는 온기에 허기진 사람들이 행사에 가득했다.

 

 

상상마당 스테이에 체크인하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신북읍으로 갔다. <큰지붕> 닭갈비는 조카와 내가 춘천에 올 때마다 들리는 식당이다. 큰지붕 하나 아래 엄청난 크기의 공간에 닭과 관련된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이 가득한 식당은 맛도 좋지만 볼거리도 가득하다. 지난 여름 여행에는 거의 한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겨울이어서인지 금새 안내 받았다. 큰지붕에서 서비스를 해주는 분들은 매우 친절하다.

 

 

이미 어두워진 춘천의 거리를 달려 운교동으로 갔다. <핀든 하우스>의 크리스마스를 보러...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라던 사장님의 마음이 가득 담긴 카페 공간. 미리 성탄절이 와 있었다. 여름과는 달리 클래스 참여자들의 그림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낮은 음악에 마음을 맡기고 잠시 생각을 놓아본다. 바쁜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주말. 머리와 마음이 퍼즐 조각이 맞아들어가듯 정리되고 여백이 조금씩 늘어갔다. 주말을 이용한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이런 여행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조카도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

 

 

아침이다. -8도. 역시 춘천이다. 창 틈으로 몰래 새어드는 바람이 차갑다. 창가쪽에 잠자리를 튼 조카가 고마웠다. 자는 동안 춥지는 않았는지 가만히 옆에 누워 말을 걸었다. 잠결에도 대답을 곧잘 해주는 아이. 보송거리는 솜털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괜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마당 스테이는 조식은 기대를 저버렸다. 종류도 음식이 질도 나빴다. 조카는 영 먹지 않으려 했다. 원래 아침을 잘 안먹지만 여행중 호텔 조식에는 진심인 아이인데 별로 당기는 것이 없나보다. 상상마당 스테이는 반성해야 한다.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한번 전시회를 보러 들렸다. 그림이 참 많다. 그 중 3폭짜리 가장 큰 그림이 맘에 들었지만 내집에는 그림을 소화할 공간이 없다. 김동화샘 선생의 풍경화도 제대로 걸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은 형편에 핀든샘의 그림마저 그럴 순 없다. 대신 작은 풍경화 하나를 샀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은 좋아졌다.

 

 

춘천 봄내길 4코스가 의암호를 따라 만들어져 있다. 모두 걷기엔 복장도 시간도 무리여서 1.5킬로 정도를 걸었다. 걷는데는 이골이 난 우리이다.  언젠가는 춘천의 모든 길을 두 다리로 걸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추워서 걷기엔 딱 좋은 날씨이다. 의암호에 오리가 가득하다. 귀엽다. 가만 보니 부리만 하얗다. 우리 동네 오리와는 또 다른 귀여움이 보인다. 우리 동네 오리는 이미 인간 친화적이어서 가까이 가도 더이상 도망가지 않는다. 의암호의 오리들은 아직 사람과 친해지지 못했다. 사진을 찍으려 가까이 가니 자연스럽게 두발을 움직여 멀리 흩어져 가버린다. 저희들끼리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하다. 오리의 언어가 궁금하다.

 

 

 

<바라타리아>라는 이름의 서점에 갔다. 돈키호테의 애마가 그리는 상상의 공간을 바라타리아 라고 한다. 조기 은퇴한 부부는 직접 3층 건물을 짓고 서점을 열었다. 춘천의 오래된 집과 봉의산이 보이는 넓은 창과 높은 서가가 특징적이다. 작은 도서관에 와있는 기분도 든다. 주인장의 독서 지평이 매우 넓다고 생각했다. 나열된 책들이 다양하다. 아무리 읽어도 아직도 읽을 거리는 이렇게 넘쳐남다. 독서에 대한 책방지기의 마음도 독특했다. 청소년들이 읽기를 바라는 책을 기부하는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선 세대가 후 세대에게 물려줄 많은 것들 가운데 좋은 책을 읽는 독서라는 습관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도 없겠다 싶었다. 이런 어른들이 많은 세상이면 좋겠다. 

 

 

젤라또를 먹고,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의 선물을 사러 다시 신북읍으로 갔다. 닭갈비와 감자빵을 샀다. 한적한 도로에서 운전대를 조카에게 맞겨보았다. 생각보다 운전을 잘한다. 고속도로 운전도 시켜봐야겠다. 

 

 

늦은 점심을 마지막으로 춘천의 일정을 마치기로 했다. 살짝 매콤한 막국수가 먹고 싶었다. 검색을 하다가 조카가 말한다. 바라타리아 옆에 그 식당이 있다고. 다시 근화동으로 갔다. 정말. 선거관리위원회 주차장. 오늘만 두번째이다. <메바우 명가 춘천막국수 >  정말 맛있다. 함께 나온 맑은 백김치와 열무도 맛있다. 매운 것을 잘 못먹는 내게도 딱 맞았다. 춘천 막국수 맛집에는 이름만대면 알만한 사람들의 사인이 가득했다. 잘 찾아온 것 같았다.

 

 

식당에서 그리운 이름을 만났다. <노무현> 이름만 들어도 울컥한다. 주인에게 물었다. 오셨다 가셨냐고. 대통령 경선 때 직접 오셨다고 했다. 반갑다고 했더니. 다시 물었다. 좋아하냐고.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노무현을 존경한다. 모두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자신의 소신대로 최선을 다한 대통령이었다. 역사가 그렇게 평가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이렇게 춘천일기를 마친다. 해가 지려 준비하던 시간 춘천을 떠났다. 어둠이 깊이 내리는 시간. 대구에 도착했다. 피곤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 춘천에서의 1박 2일. 조은 시간이었다.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