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1.
아직 컴컴한 아침 5시 반
습관처럼 잠이 깨어 아침 독서를 시작했다.
어제 무엇을 했던가. 몸이 무겁다.
30분 정도 어제 배달온
<초록 담쟁이 이수희>의 <그날들이 참 좋았습니다>를 읽고 보았다.
따뜻한 아랫목 같은 기억들
쉽게 읽히고 빠르게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렇게 보고 읽으면 안 된다.
정성껏 그리고 꾹꾹 눌러쓴 문장 하나하나 정성껏 읽고 봐야 한다.
눈이 아프다.
다시 책을 들고 침대로 갔다.
그렇다고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잤다.
7시쯤 다시 일어났다.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일력을 바꾸었다.
괜히 울컥했다.
독서노트에 날짜를 적으며 다시 울컥했다.
먼저 이렇게 썼다.
꾹꾹 눌러 정성껏 적어야 할 오늘 하루의 이름
2022. 12. 31.(토요일)
생각해보니 더욱 뭉클해지는 숫자. 시작보다 더욱 큰 의미의 마무리.
오늘 하루를 조심스럽게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나의 서재에 시유니 자고 있다.
다 큰 아이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김치수제비를 아침으로 먹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는 아침부터 밀가루를 먹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 아이가 먹고 싶다면 기꺼이 함께 먹어주고 싶다.
밀가루를 개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나 행복감이 크다.
일 년에 100권의 책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올해도 82권의 책을 완독하고 리뷰를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게으른 이는 석양에 바쁘다.
어제서야 읽다만
그래서 리뷰가 없는 책 두권(<아무튼 택시>,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을 서둘러 읽었다.
오늘도 나머지 두 권(<여행자의 책>, <아침의 피아노>)을 더 읽어야 한다.
역시 바쁘다.
읽다만 책들은 모두 에세이나 산문집이다.
역시 나는 산문집을 내처 읽지 못한다.
아무튼 읽기 시작했으니 이것들도 마무리하고 싶다.
'베이지 멜로우'를 검색해
<더 눈부실 2023년을 위한 피아노 연주곡>을 틀었다.
한 해 동안 나의 아침
소리(SOUND)를 맡아준 고마운 채널이다.
피아노 연주곡은 책을 보는 데도 일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찻물을 올렸다.
오늘은 보이차 대신 작두콩차이다.
연하게 우려 작은 찻잔에 받쳐
책을 읽거나 베란다 밖을 보며 마셨다.
일찍 집을 나서야 하는 날이 아니면
차를 마시는 아침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대부분 보이차를 마셨지만
올해는 작두콩차와 때로 커피와 허브차도 마셨다.
이른 아침 공복에 마시는 따뜻한 차는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감사한 것 중 하나이다.
아침을 먹었다.
오래 끓은 김치 콩나물국에 넣은 수제비가 은근히 맛있다.
시유니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아침을 먹으며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를 봤다.
귀여운 두 명의 여인.
언제 들어도 좋은 음악들.
책을 읽는다.
<여행자의 책> 폴 서루
그리운과 고독의 자유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의 가방에 챙기는 단 한 권의 책.
지나친 과장이다.
50년쯤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행에 대한 나름의 통찰이 생겨날 법하다.
재밌는 구석도 꽤 있다. 이것은 별도로 리뷰할 거다.
어쨰튼 오늘은 올해 안에 해야 할 것들을 할 것이다.
그중 하나가 이 책을 읽는 것이다.
이미 연체되어 있는데 새해까지 연체를 가져갈 수 없다.
몰아 읽기는 힘들다.
힘들면서 왜 굳이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하고 있는지.
<아침의 피아노>로 바꿔 읽는다.
죽음을 코앞에 둔 철학자의 일기가 애달프다.
2022년 12월 31일에 읽으니 더욱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육체의 몰이 가까운가 보다. 기록의 양의 줄어들었다.
생보다 사에 가까운 시간축
그 시간에 덩그러니 남겨진 철학자는 여전히 글을 쓴다.
늦은 점심을 시윤과 함께 했다.
볼거리를 찾다
넷플렉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기 시작했다.
폭력, 폭력, 잔인한 폭력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짓밟힌 학생.
그리고 살기 위해 벌이는 복수의 시작.
일단 보기로 했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보기 싫은 것도 알고 싶지 않은 사실도 직면해야 하니까.
해가 지기 전에 가볍게 산책을 했다.
5시가 가까우니 서쪽으로 황홀한 해가 화려하게 지고 있다.
오늘의 해가 진다.
2022년의 마지막 할 일을 마친 해가.....
내일은 다시 새로운 이름의 해가
말간 얼굴을 하고 솟아오를 것을 알고 있다.
올 한 해 읽은 책들을 정리해 본다.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다.
직접 산 책들도 꽤 있다.
소장본으로 산 책도 있다.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꽤 있다.
새해에는 차근차근 읽어야 한다.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들도
매일매일 산더미처럼 쌓이는데.
밖이 어두워졌다.
2022년의 마지막 밤이다.
이대로 조용하고 엄숙하게 저물어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일은 언제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날벼락을 맞았다.
이런 일들은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되어 발을 찌른다.
피가 나지 않았으나 많이 아프다.
부끄럽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오늘이 차라리 낫다.
오늘 일은 오늘로 끝내고
잊어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