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um 2023. 3. 20. 12:17

한동안 안 했던 일을 했던 탓일까.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한 때문일까. 온몸이 뻐근하다. 어제 부추를 옮겨 심고, 감자를 심을 이랑(두둑)을 만들어 두었다. 오늘도 할 일이 많다. 도시락을 만들어 조카를 출근시키고 번개시장으로 갔다. 일요일이어 뭔가 있을 턱은 없었지만 지금은 모종 샾이 대목인 시기이니 뭐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사실 어젠 산 씨감자가 부실해 보여 혹시 바로 심을 튼실하고 맛있는(?) 감자를 기대하면서.

 

바닥에 잔뜩 나열한 모종들을 보니 그냥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작고 여리지만 싱싱한 그 초록빛에 홀려 양상추, 양배추, 케일, 샐러리에 고수까지 사고 말았다. 또 일거리를 만들었다. 속으론 자제해야 한다고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이것도 저것도 심어보고 싶고, 데려오고 싶은 욕심에 자꾸 무리를 하는지도. 내심 찾던 씨감자는 없었다. 문을 닫은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밭으로 갔다. 5월 연주회에서 연주할 곡으로 모짜르트 소나타 16번이 결정되었다. 너무 많이 알려진 곡이어서 걱정이 되지만 어쨌든 결정되었다. 열심히 준비하자. 해야 할 것들이 많다. 먼저 밭으로 가자. 생각보다 햇살이 강하다. 삼랑진 장에서 산 밭일 모자(무척 맘에 든다)가 있어 든든하다.

 

어제 옮겨심은 부추들이 생각보다 싱싱하다. 가장자리를 늘려 한 줄 더 옮겨 심고 물을 듬뿍 주었다. 곰보배추는 더 싱싱하다. 역시 강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다. 쓰러진 호두나무를 그대로 두고 곰추배추를 마주 보는 땅이 바싹 말라있다. 물을 뿌려도 결국 먼지가 날린다. 작은 밭을 만들었다. 거기에 고수와 셀러리를 심고 한쪽에 작년에 쓰고 남은 루꼴라 씨앗을 흩뿌렸다. 씨앗 네 맘대로 하렴. 싹이 나면 고맙지만 뭔가 뜻대로 안 되면 굳이 힘겨운 고생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물을 주었다. 루꼴라도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언제나 풍성한 결과물을 주었던 채소이다. 

 

 

옮겨 심어야 하는 쪽파 주변에 골을 파서 물을 주었다. 이 쪽파들도 포기를 나누어 옮겨 심어야 한다. 어디에 심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을지 고민이다. 나는 늘 파에 약하다. 옮겨 심고 남은 부추밭을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깊게 뿌리가 박혀있어 이것을 삽이나 호미를 일일이 걷어낼 일이 엄두에 나지 않는다. 대신 물을 듬뿍 주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일단 무럭무럭 자라면 한번 거둬 먹고 나중에 밭을 정리하기로 했다. 여백이 남은 공간에 잔돌을 정리하고 상추와 쑥갓을 파종했다. 작년에는 상추가 잘 되지 않았다.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가뭄 탓도 있었지만 어쨌든 잘 되지 않았다.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다.

 

그 옆에 한 줄 밭을 만들어 멀칭했다. 케일과 양배추 양상추를 심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케일이 아닌 양배추가 더블로 온 것 같다. 생긴 모양이 같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아직 아기들의 얼굴을 보고 구별할 만큼 능력 있는 농부가 아니니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양배추든 케일이든 상관없다. 케일은 언제나 기쁨이고 건강이니 아니면 나중에 한 줄 더 심으면 그만이다. 케일은 그냥 먹어도 쪄먹고 갈아먹어도 다 좋다. 듬뿍듬뿍 나눠주어도 행복이니까.

 

감자밭을 멀칭했다. 아무래도 감자 싹에 자신이 없어 한주를 미루기로 했다. 베테랑 사장님께 물어보니 괜찮다고 하신다. 오늘 밤이 잘라두고 잘린 면이 조금 마르면 수요일 오후에 일찍 퇴근해 심을 수 있을지 아니면 토요일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 요즘 일이 많아서. 일이 많은데 주말까지 이러고 있는 내가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올해 아무리 바빠도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는 피아노와 텃밭이다. 그림과 글쓰기 공부는 아예 뒷전이 되었다. 대신 틈나는 대로 읽기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힘들어도, 내딛는 걸음이 더디고 적어도, 내 삶에서 음악과 농사는 포기할 수 없다. 잘하려는 생각도 없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그래야 내가 사는 거니까.

 

 

매화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금호강을 바라본다.. 이런 호사 아무나 누리는 것은 아니다.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