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2014). 식물들의 사생활 문학동네.
2023-20, 4/6~4/12
나는 소설읽기가 좋다.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인물들의 삶을 소설을 통해 경험해본다. 나의 독서는 비약하지만 소설읽기의 역사라고 해도 좋다.
책을 이어보다 보면 중심선보다 지선으로 빠질 때가 있다. 한권의 책속에는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어 혹시나 싶어 찾아보면 한권을 책을 따라 길을 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읽어싶어 빌려둔 책이나 직접 골라 산 책에는 먼지가 쌓이기도 한다.
올해 들어 네번째 달. 나는 골목길을 헤매다 겨우 빠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3월 한달도 소설을 전혀 읽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책상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이승우의 소설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하드커버. 손에 쥐고 읽기 쉬운 사이즈 A5. 적절한 두께감. 소설에 허기진 내게 아주 적합한 조건이다.
첫 문장은 "왜 웃어요?" 거리의 여자가 주인공 기현에게 하는 말이다. 매우 감각적이다. 궁금하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어릴적 집을 나와 동네 양아치로 사는 나, 기현. 기현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형 우현이 있다. 형은 모든 것이 훌륭한 유전자를 가졌다. 기현은 형을 사랑했고, 질투했다. 형은 우현의 열등감이 맘에 들지 않았다. 형제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서로 다른 길로 걸어나갔다.
우등생 형의 여자. 순미. 한눈에 순미에게 맘을 뺏긴 기현. 기현의 양아치 행동은 형제인 우현뿐 아니라 순미도 거절하게 만든다. 그렇게 기현은 복잡하고 되는대로 사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의 뒤를 캐주는 그러그러한 일을 하는 성인이 되었다.
우현은 군에서 폭발사고를 당한다. 무릎 양지가 절단되었다. 혼자서는 기본적인 생활도 하지 못한다. 심한 트라우마 때문일까. 가끔 심한 발작을 한다. 그 발작을 잠재우기 위해 엄마는 거리의 여자에게 우현을 데리고 간다. 가끔. 이제 그 일을 동생 우현이 대신한다.
어느 날, 엄마의 뒤를 밟아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엄마는 먼 남쪽 도시 '남천'으로 향한다. 거기서 이름 모를 남자를 만나고 깊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격한다. 엄마가 벌거벗은 채 사랑을 나누던 남천에는 엄청난 크기의 야자수가 자라고 있다. 세상과는 동떨어진 은밀한 곳. 천국이나 낙원같은 그곳에서 엄마가 사랑한 남자는 누구인가.
엄마 서영숙은 스물한살 한 남자를 만나 아주 짧지만 깊게 사랑했다. 그리고 우현은 임신했다. 남자는 사라졌다. 우현을 데리고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기현을 낳았다. 사랑의 분신은 우현이 장애를 갖고 말았다. 사랑한 남자의 아이이기에 모질게 후려치는 인생에서 우현을 돌보는데 힘을 쏟았다. 우현의 불행을 외면할 수 없었다.
기현은 우현에게 순미를 찾아주기로 했다. 순미는 기현이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순미(순수)를 남천으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내일이면 순미와 우현이 만난다. 기현은 꿈을 꾼다. 순미와 우현의 만남을.....
소설에서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아빠. 아빠는 지켜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무같은 사람이다. 아내와 아내의 아들과 자신의 아들. 이들을 가족이라 칭한다. 아빠는 가족을 지키려 한다. 가장 오래 참고 가장 오래 기다리는 사람이다. 소설의 후반 가족이면서 남처럼 살았던 네사람이 가족이라는 식탁위에서 서로를 인지한다. 각자의 욕심보다 가족으로서 자신들을 찾고자 한다. 참으로 긴 시간을 돌고 돌았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언제나 그렇게 모진 것 처럼.
"어머니의 순결을 강조해서 말하는 아버지의 의중을 속속들이 헤아리기는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하는 어머니의 순결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도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지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에 대한 이해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 것과는 같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에 나는 아버지에 대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특별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그다지 행복하게보이지 않은 아버지의 바다를 품고 있는 남천의 그 키 큰 나무처럼 넓고 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주 막연하게 예감을 했었지만 그것은 희미하고 흐릿했다. 그것을 앎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때 이미 아버지가 나무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