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김영하 옮김 (2009).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2023-26
5/3~5/7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7
김영하의 번역으로 다시 읽는 <위대한 개츠비>
연휴 동안 모두 읽고, 같은 이름으로 제작된 두 편의 영화까지 모두 봤다. 1975년 작품이 디카프리오 주연의 2013년 작품에 비해 원작의 문장과 줄거리에 충실했다. 전편의 로버트 레드포드도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도 모두 너무 멋있었다. 우직하고 순수한 상상 속에 사는 조이 개츠비에 잘 어울렸다.
데이지의 선택. 안타깝지만 인정해주고 싶다. 연약해보이지만 속물적이고 감각적이다. 완전 지멋대로이다. 제 맘대로 사랑하고 버리고, 살인조차 제 맘대로 합리화시키는 인물이지만 왠지 이해해주고 있었다. 저절로 만들어진 자신의 인생에 가장 어울리는 자신을 만드는 데 가장 충실한 사람. 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집에 아름다운 외모로 태어나 공주 같은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자란 데이지. 요즘으로 치면 자신을 찾아야 하는 사춘기에 무수한 남자들의 구애를 받는다. 당연하다 생각한다.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중 가장 어울리는 상대를 골라잡아 우아하게 결혼하고 그저 품위를 지키며 살면 된다.
그런 그녀에게도 운명 같은 사랑이 있다. 가진 것 없는 장교 개츠비다. 아마 깊이 빠져 사랑했다. 개츠비라면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전쟁으로 입대한 그를 얼마 동안 기다리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개츠비의 편지를 가슴 치며 슬퍼하는 것으로 톰과 결혼하는 자신을 합리화한다. 연기에도 능하다. 사람을 홀리는 데도 능하다. 사람들은 거기에 속는다. 연약한 데이지가 어쩔 수 없이 사랑을 가슴에 묻고 톰과 결혼했다고..
그러나 그녀는 속물이다. 사랑보다는 돈이다.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을 쟁취하기 보다 당장 곤란한 처지가 싫다. 복잡해지기 싫다. 변명은 당연히 싫다. 세상이 자신에게 맞춰 주는 게 당연하다. 난 그런 여자니까.
예전에는 개츠비의 어리석은 선택에 분노했었다. 그따짖 사랑이 뭐라고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힘겹게 올라선 세상을 버린다는 말인가 싶었다. 지금은 데이지가 보인다. 소설의 뒷부분에 데이지가 사라졌다. 개츠비의 죽음 따위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잠시 만난 옛사랑과 꿈같이 사랑하고 그때까지 자신이었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멋지다고 말할 순 없지만 당당하지 않은가.
우리는 살면서 데이지처럼 하지 못한다. 그것이 거짓이라 탓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데이지를 비난한다. 그러나 데이지는 자신의 삶을 지키는 데 가장 최선을 다한다. 복잡해지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철저하게 지킨다. 1920년대 여성이 모두 그랬을 수 없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데이지를 이해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