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um 2023. 6. 19. 15:37

황정은 (2020). 연년세세, 창비

 

2023-33

 

6/17~6/19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모든 스토리가 그런 것은 아니다. 거기에 사람이 있고 관계가 있고 사건도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누구랑 왜 했는지가 있다. 거기에서 다음 얘기가 꼬리를 물고 나온다. 흥미로운 스토리는 이렇게 밀도있게 흘러간다.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몰입한다. 그런 책을 읽고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다. 이런 걸 읽는 맛이라고 할까.

 

그러나 어떤 스토리는 밀도가 약하다. 몰입감도 적다. 그저 누군가의 생각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느낌이다. 그 속에서도 언어로 풀어진 생각들은 나름의 운율이 있어 읽기에 큰 무리가 없다. 몰입감이 없다고 나쁜 독서는 아니다. 그저 산책하듯 야금야금 읽으면 된다. 내게 황정은 작가의 소설들 약간 그런 부류의 책이다. 이웃의 얘기이자 우리들의 얘기다. 살면서 적어도 한 번 쯤 같은 경험을 했을 법한 그런 느낌이 드는 얘기들을 엄청나게 담담하고 끈질지게 한다.

 

대부분의 연작소설은 작가의 세계가 보인다. 하나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상상력이 그저 나올리 없다. 작가가 원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도 보인다. <연년세세>는 가족과 친구들의 얘기다. 세대가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 딸, 아들 그리고 친구 이웃. 살짝 시점을 달리하면서 각자의 얘기를 한다. 

 

많은 문장 중 하나가 남았다. 슬프지만 딱이다 싶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 들 중에 그래도 먹을만한 것을 골라 오물을 떨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쨎튼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이지도 모르겠어(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