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아버지에게 갔었어

Jeeum 2023. 12. 10. 07:36

신경숙(2021). 아버지에게 갔었어, 창비

 

2023-64

 

일단 읽어보자. 

 

긴 소설 어딘가에서 내가 울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어디쯤에서. 아버지의 넷째딸 헌이는 소설가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혼자 있는 아버지곁으로 간다. 자신도 딸을 잃고 혼자였다. 아버지를 위해서라기 보다 자신을 위해. 오랫동안 떠나있던 곳이지만 나고 자라는 동안 스쳐온 기억이 당연히 많다. 하나씩 끄집어 내고 있다. 

 

한동안 풍요와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주었던 우사 곁에 우사를 돌보던 사람들이 묵었던 오래된 초가가 있다. 거기 방에 아버지의 분신같은 '나무궤짝'이 있었다. 그 속에 있는 편지. 큰 아들 승엽이 리비아에서 보낸 첫 편지에 떨어진 아버지의 눈물방울. 그것을 작가는 이렇게 썼다.

 

아...... 나는 무릎이 꿇려지는 기분이 되었다. 이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가 흘린 눈물방울이 번진 자국이란 생각이 들어서. 손바닥으로 글씨가 번진 자리를 쓸어보았다. 어떤 마음들이들이 손바닥에 사진처럼 찍히는 느낌이었다. 오래전 낯선 나라로 파견근무를 나간 젊은 남자가 책상인지 숙소 침대 바닥인지에 엎드려서 편지지를 앞에 놓아 두고 온 나라 고향의 아버지에게 굵직한 사인펜으로 편지를 쓰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뜻밖애 내 마음을 흔들었다. 마른 풀숲 같던 마음이 일순 어딘가로 곤두박질치듯 흩어져 버리고 저 멀리 젊은 남자의 등이 보였다. 아버지, 근사하지요?라고 쓰고 있는 사인펜을 쥔 긁은 손도.167

 

'아버지'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로 이루어졌다는 생각.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올 수 있었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62쪽)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삶이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숨을 받은 자의 임무이기도 한다는 것, 그 곁에 읽는 것들과 든는 것과 보는 것이 있기도 하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423쪽)"

 

소설 속 먹거리

 

오늘 아침엔 내가 아침식사로 연두부를 내놓으면서 간장 대신 명란을 올리고 들기름 한방을 떨어뜨린 것을 두고 맛이 고소하다는 평도 했다.(119쪽)

 

작가가 아니라도 단풍 들 때 복자기 자태며 계수나무가 뿜어내는 그 달콤한 냄새를 맡어보면 그 순간만이라도 매인 것 처럼 놓여날 것이오. 복자기 단풍든 자태는 먼 디서도 바로 아라볼 수 있을 것이오. (중략)계수나무 자태가 눈에 띄기 한참 전 부터 냄새가 맡아지오. 그 냄새를 뭐라 해야 할까 모르겠소. 작가라니까 꼭 맡아보고 표현해보시오. 잎사귀에 단풍들면서 자디단 냄새가 주변으로 스미는데 이 냄새가 어디서 나나 하고 눈으로 따라 가다보면 계수나무 앞에 머물게 되지.(304쪽)

 

너도 잘 마치고 와라잉, 하고 메마르고 갈라진 목소리가 귓전에 남아있지 않았다면 내가 헛것을 봤거나 꿈을 꾼거라고 여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