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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의 좌충우돌

Jeeum 2019. 4. 1. 09:22


여행지에서의 좌충우돌



 

프라하는 기대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공기도 하늘도 집들도 돌길도 모두. 도시 자체가 예술이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넘치는 아름다운 풍광은 눈으로만 담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갑고 냉정했다. 그들의 말이 갖는 억양이 강해서일까? 여기저기 들리는 말들이 칼날처럼 조각조각 부서졌다. 세계 각지에서 계절에 관계없이 엄청난 사람들이 밀려들기 때문인지, 이제 그들도 사람에 지쳤는지, ‘손님은 왕이라고 텃세조차 당연한 우리에게 그들의 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다들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것 같지만 억양마저 크게 달라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프라하 여행의 가장 큰 하나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프라하성을 잇는 카렐교를 보는 것이다. 멀리 프라하성을 배경으로 인생 샷하나는 건져야 하지만 언제나 넘치는 인파 때문에 어렵다. 여행안내서에는 가능한 아침 일찍 가는 것이 좋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피로에 코를 골며 자는 여행 동지들을 깨워 일요일 아침 일찍, 세수도 안한 채 모자를 눌러쓰고 카렐교를 찾았다. 프라하에 있는 동안 우리의 집이 되어 주었던 아담의 아파트에서 걸어서 10분 남짓. 이른 아침에도 햇살은 따뜻하고, 오가는 발걸음도 분주하고, 손님맞이를 준비하는 식당도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달콤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사진도 찍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성자의 발도 만져보았다. 기분좋게 아침밥을 준비하러 돌아가던 길이었다. 트램과 자동차가 달리는 그다지 넓지 않은 도로의 횡단보도에는 신호를 무시하고 많은 사람들이 건너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였는지 알 수 없다. 후배와 손을 잡고 건너는데 길 건너에 진짜 총을 허리에 차고 있는 경찰이 우리를 불렀다. 교통신호 위반 현행법으로 잡힌 것이다. 이들은 경찰답게 냉정하고 차가웠다. 현행범인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었고, 경찰을 사칭한 사기도 있다고 들은 터라 ~ ‘미안하다’, ‘몰랐다’, ‘앞으로 안 그러겠다’, ‘외국인인데 안내를 해줘야지 무턱대고 잡고 벌금부터 내라니 너무하다등등 떼를 쓰고 버티었다. 뒤에 잡힌 말이 통하는 외국인이 순순히 벌금을 내는 것을 보고서야 할 수 없이 벌금을 냈다. 300 크루나는 큰 돈이 아니었지만 여행지에서 교통신호 위반 벌칙금을 내는 것은 처음이어서 얼떨떨했다. 멀리서 아는 척도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던 동료들도 벌금을 기어코 받아가는 그들을 보고는 낄낄거리고 웃고 서있었다. 일요일 아침의 사건이었다.

    


    며칠 뒤 프라하 성에서 일행과 헤어졌다. 혼자 따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였다. 22번 트램을 타고 우예즈드역에서 내리면 공산주의에 희생된 사람을 위한 기념비가 있는 공원이 있다. 혼자서 산책하며 프라하의 봄과 1980년의 봄을 떠올려보았다. 얼굴과 피부색은 달라도 평화와 자유를 갈망하는 투쟁의 역사가 공존한다. 여행은 이런 시간을 부여해 지금의 내 삶을 충족시키고 있다.

  

  

내친 김에 푸니쿨라(케이블카)를 타고 페트르진 전망대를 오른다. 체코의 모든 교통권은 시간제이다. 표를 끊어 탑승할 때 확인을 받으면 그때부터 시간이 자동 계산된다. 혼자서 다녀오는 것이니 전망대까지 다녀와도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아 안심하고 1시간권을 끊었다. 그러나 변덕스런 그날의 날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푸니쿨라에서 내릴 때부터 우렁차게 쏟아지던 비 때문에 전망대 도착도 지연. 세찬 바람 탓에 꼭대기까지 오르는 데 또 시간 지연. 그러다 정해진 시간을 놓쳤다. 다시 하행선을 타려고 표를 사려했지만 자동판매기는 있어도 잔돈이 없었다. 역시 체코에서는 잔돈이 필수적이다. 매점에서 교환하면 되지만 푸니쿨라 탑승장에는 매점이 안보였고, 빗속에 다시 전망대 매점까지 다녀오기도 어려웠다. 이리저리 고민하다 포기하고 그냥 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보는 경치도 아름다워 잠시 무임승차를 잊고 있었다. 우예즈드역의 역무원은 무임승차 동양여자에게 매우 각박했다. 승차요금의 10배를 내라고 한다. 사정 설명을 해도 소용없다. 이 분들은 영어마져도 안 통했다. 억센 체코 말에 모른 척하고 돈이 없다고 버텨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유로화를 모두 줄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을 배신하고 혼자 다니고 싶어 시간을 얻은 대가치곤 가혹했다.

  

  

트램을 타고 약속된 스타벅스에서 다시 친구들을 만났다. 힘이 들었던지 아이스 카페오레가 무척 달콤했다. 얘기하기 창피해서 감추어두었다. 귀국 후 여행기에 그 내용을 써서 보여주었다. 다들 놀려대기 바쁘다. 여행은 이런 것이다. 낯선 문화와의 만남. 말도 잘 안 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감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교통 체계와의 만남. 그 좌충우돌 속에 두 번이나 치룰 수밖에 없었던 벌금의 기억. 아름다운 도시에서 겪은 좌충우돌. 여행은 역시 예기치 않는 사건이 있어 즐거운 것이다. (2019.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