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um 2024. 4. 14. 18:21

신경숙(2007), 리진 1,2, 문학동네.

2024-18 & 19

4/10~4/14 1권 

4/15~4/19 2권 

 

소설가는 위대하다. 소설가가 하는 이야기(상상)의 세계는 뭔가로 가득차있다. 그들의는 언어는 어디서 오며 어떻게 얼개를 짓는  것일까. <리진 1,2>  감동이다. 별다른 기대없이 도서관에서 빌린 낡은 책 속으로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들여 정성껏 읽었다. 정신없이 바쁜 중에도 짧은 시간 몰입하게 만들었다. 1권을 다 읽고 2권을 시작하며 조마조마하다. 알 수 없는 한 여성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1권

 

인생이든 상황이든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오히려 변화가 찾아온다(13쪽)

때로 어떤 다정한 말은 땅에 묻힌 씨앗처럼 사랑을 품게 만든다. 바다 건너 그의 나라로 간다는것은 전혀 다른 말씨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불안한 마음을 짐작했던 것일까. 콜랭은 그녀의 나라 조선의 산골객관에서 나의 천사여, 라고 처음 완벽한 발음의 조선어를 썼다.(25쪽)

외로운 이에게 어린이의 체취는 따뜻한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다. 이제 막 심어놓은 아그배나무 잎새같은 어린 진이를 언제부턴가 철인대비는 날이 밝자마자 기다리게 되었다.(92쪽)

소년이 싫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개를 짓게 되었다. 진이는 불을 바라보며 제 속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더러운 건 씻으면 되는 것이지.

-씻어서 깨긋해지는 건 더러운 게 아니야. 그냥 뭐가 묻은 것이야. 누더기를 입은 사람을 더럽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더러운 게 아니라 가난한 것이지. 가난한 것은 그 사람 허물이 아니다. 

-

-하지만 마음이 더러워지면 씻을 수가 없는 법이다. 그것은 죄가 되지.(62쪽)

좋아하는 사라이 생기먄면 살아가는 일이 덜 힘든 법이다. 좋아하는 일로 일이 덜 힘들게 된다 해도 그 힘듦이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게야. 너는 부자다. 마음 속에 선교사님이 있지 않니.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진짜 가난한 사람이거든.(65쪽)

어떤 눈 속엔 운명이 담겨있다. 관리의 재촉으로 걸음을 빨리 옮기다가 뒤가 당기는 것 같아 콜랭이 뒤돌아보았을 때다. 콜랭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뒤를 돌아다보고 있던 궁녀의 눈과 콜랭의 눈이 한순간 마주쳤다.(107쪽)

사람의 마음은 얽힌 실뭉치와 같다. 억지로 풀려고 하면 더욱 엉켜버린다.(262쪽)


2권

 

풍랑을 견딘 배만이 항구에 닿는다.(11쪽) 

 

마음의 소리는 귀에만 닿는 게 아니라 피부에도 스며든다. 모파상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모여든 사람들을 침묵시켰다.(35쪽)

물소리를 내지 않는 강이 깊은 법이다.(90쪽) 

파리의 구경꾼들 속에서 가끔 이런 다정한 눈빛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모파상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인생에 무관심하면 희망이 죽고 다른 사람의 삶에 무관심하면 죄를 짓게 된다고 하던 이도 모파상이었다. (112쪽)

혼자 있는 사람의 뒷모습엔 하지 못한 말이 씌여 있다. 콜랭은 광장의 울창한 너도밤나무에 둘러싸인 회전목마 옆에 황량하게 서 있는 리진을 지켜보았다.(157쪽)

객관마루에서 아낙의 젖을 물고 있던 어린애마저 다른 마라 사람 보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느끼자, 고통이 밀려왔다.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187쪽)

강연은 고개를 돌려 깊은숨을 내쉬며 잠든 리진을 보았다. 희망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희망을 갖는 일보다 더 힘겹다.(267쪽)

 

기평 현장실사 막바지 번잡한 일정 사이사이에 리진2를 읽느라 마음에 남의 문장에 제대로 표시를 하지 못했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리진의 삶은 파리에서 보다 더욱 각박해졌다. 급박하게 변하는 궁의 상황, 살얼음처럼 사는 왕비, 왕비(명성황후)의 죽음 목격, 손을 잘린 채 행방조차 알수 없어진 강연, 삶을 놓아버린 리진을 읽는 동안 황당하고 어지럽고 두통이 일었다. 잔인한 생이었다. 물리적으로 표시를 남기진 못하지만 가슴에 남은 상처로 소설을 읽은 소감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