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삶을 쉽게 등지지 않는 힘)
최은영(2023).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문학동네.
2024-36
동명의 단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020년 문학동네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
6월, 학기가 마무리되고, 방학에 들어서고, 계절학기 수업이 결정되면서 나의 일상이 많이 달라졌다. 열심히 했던 업무 이외의 독서(주로 소설)에서 빠져나온 나는 수업을 위한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 보고, 관련 교재를 보았다. 이것만으로도 시간은 모자랐지만 역시 세상 일은 언제나 간단히 그치지 않는다. 8월 말까지 논문 한편을 써야했고, 공동 집필이지만 교재 원고도 8월말까지 제출해야 했다. 덕분에 학기가 끝난 여유로움을 즐기지 못하고 매일 거의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나름 즐거움도 있었다. 한참 공부하던 시절에 그랬는 던 것처럼.
그러나 핑게일지 모르지만 나의 일상에서 좋아하는 소설을 읽기 위한 <아침독서>가 서서히 사라지고 수업을 위한 읽기가 자리를 대신 했다. 언제나처럼 책은 늘 가방 속에 있었으나 읽을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렇지마 착실한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알뜰하게 지나간다. 아득히 길게 느껴지던 3주간 15일간의 연속 수업이 드디어 12일째를 맞는다. 14일까지 완성해서 제출해야 했던 논문의 제출일자가 26일로 연기되었다는 문자까지 날아들었다.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잠시 수업 준비를 놓아두고, 논문 작성에서 벗어나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다시 책을 읽는다. 읽기의 달콤함. 이토록 달콤할 줄이야.
다시 읽기 시작한 첫 책은 최은영 작가. 작년 많은 북투버들이 추천했던 기억도 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그래 맞다. 시간에 쫓겨 마음껏 읽을 수 없었던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정의 비틀림 덕분에 이토록 새콤달콤한 시간을 누리는 것도 내 삶의 희미한 한줄기 빛일지도 모를 일임을. 억지로 끼어맞추어 이상한가. 사람이 원치 않는 짙은 어둠 속에 있을 때 그 시간이 고통일 때 어딘가 난 작은 틈새로 새어나오는 희미한 빛 하나가, 누군가의 짧은 말이, 삶을 유지할, 움직일 희망이나 이유가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최은영의 시선을 통한 태어난 문장 안에 언제 누가 어디서 희망이나 이유가 필요한 일들로 아프거나 안타깝거나 절망하거나 힘들어하는지 차근차근 읽고 싶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그 수업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드었다. 시멘트에 밴 습기가 오래도록 머물된 지하 강의실의 서늘한 냄새. 천원짜리 무선 스프링 노트 위에 까만 플러스펜으로 글씨를 쓰던 느낌. 그녀의 낮은 톤의 목소리가 작은 강의실에서 퍼져나가던 울림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과제로 내준 에세이들이 좋았고, 혼자 읽을 때는 별 뜻 없이 지나갔던 문장들이 그녀가 그녀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머릿속에서 불이 켜지는 느낌도 좋았다. 나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발견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않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미화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썼다.
나는 아직도 그녁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
명료하게 자기 생각을 보여주는 글도 있지만, 한쪽으로 비켜서서 응시하는 글도 있으며, 어떤 방식이 더 좋은 것인지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휘둘리느라 자기의 목소리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그녀는 내게 넌지시 말했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저곶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퇴근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망토를 두른 것 같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언제나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하는 경험을 했다.
겨울은 사람의 숨이 눈으로 보이는 유일한 계절이니까.
나이가 들고 성숙해진다는 건 그저 자신의 환경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기남은 낯선 그곳에 앉은 채 자신이 여전히 미숙하고 여전히 두려움이 많은 아이라는 걸 깨달았다.(312쪽)
얼마나 막막했을까? 자기가 낳은 딸집(홍콩)에 와서 혼자 다니다 가방을 잃어버리고 거리를 헤매는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을까. 어른이라 어른인 척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럴 여지도 주지 않는 딸. 엄마는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할머니?
응
마이클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기남을 바라봤다.
"부끄러워요?"
"부끄러워해도 돼요. 부끄러운 건 귀여워요. 에밀리가 그랬어요."
"근데 너무 다정하면 안된대요."
"너무 다정한 건 나쁜 거래요."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또 내일과도 다를거라는 근거를 적어두는 거지. 기록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같은 날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한꺼번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거든.(답신, 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