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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 시장

Jeeum 2019. 10. 26. 09:45

물 안 시장

 

 

 

 

조금 전에 봤던 그 옷가게를 찾고 있다. 분명 이 쯤에 있어야 하는데 사라졌다. 서문시장 4지구 지하층, 같은 길을 이리저리 벌써 몇 번째 돌고 또 돌고 있다. 찜했던 원피스를 사고 싶은데 도대체 가게가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돌아도 왼쪽으로 돌아도 비슷한 가게들만 계속될 뿐이다. 다시 1층으로 돌아가 복기하듯 걸어 봐도…… 작정하고 숨어서 어디 제대로 찾는지 보려는 듯 가는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게마다 딸려 있던 번호나 아니면 이름이라도 기억했어야 했다. 시장을 자주 찾지 않는 사람이니 요령이 있을 턱이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서문시장 지하에 예쁜 여름 원피스가 많다고 지인이 말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단다. 여름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물 목록에 편하고 이쁜 원피스 사기가 들어 있던 터라 스치는 그 말이 귀에 쏙 박혔다. 어느 날, 찾아온 여가를 서문시장 원피스 쇼핑에 쓰기로 했다. 저렴한 이쁜이를 찾게 되면 여행 친구 셋에게 서프라이즈 선물도 할 요량에 맘이 부풀었다.

 

장터국수 한 그릇을 뚝딱 먹고 나니 그득해진 배 덕분에 다리에도 불끈 힘이 올랐다. 시장 구경, 옷 구경을 제대로 할 참이었다. 4지구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원했다. 크고 작은 가게들이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볼거리가 가득했다. 쇼핑에 굶주린 여성들의 눈이 나이를 막론하고 불빛에 반짝거렸다. 혼자서 천천히 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장 쇼핑 완전 초보인 나에게 서문시장 상가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미로 공원이었다. 비슷비슷한 옷가게가 가득한 4지구도 마찬가지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전에, 나는 결정해야만 했다. 빨리 일을 보고 떠나자고.

 

서둘러 지하로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한편은 먹거리, 반대편은 알록달록 옷가게들이 역시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 녀의 말처럼 원피스가 많았다. 마침 맘에 쏙 드는 원피스를 만났다. 만져보고 대보았다. 여자의 옷에 대한 욕심은 그럴 때 결코 겸손해지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좀 더 돌아보고 오겠다고 하곤 그 가게를 나섰다. 하지만 나는 그 원피스가 걸려있는 가게를 다시 찾지 못했다. 시장을 떠날 때 내 손에는 남산동 납작만두가 든 검은 봉다리 하나가 달랑 있었을 뿐이었다

  

쾌적하게 잘 지어진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익숙해진 나에게 재래시장은 점점 멀어지는 연인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언제까지나 마음을 나누며 함께 하고 싶은데 맘과 달리 계속 멀어져 간다. 어릴 적 울 엄마는 남산여고 앞 폴짝 다리를 건너 내 손을 잡고 방천시장을 매일같이 다니셨다. 엄마를 따라 시장엘 가면 여름이면 우무묵 콩국, 겨울이면 유부조각 들어간 따뜻한 콩국을 사 주셨다. 그 맛이 그립다. 그 때 그 시장은 어린 내게도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지금은 김광석 거리에 먹자골목으로 변한 방천시장을 보면 알 수 없는 아쉬움이 크다.

 

시장이 하늘과 땅을 버리고 콘크리트 건물 속으로 들어가서 편리해졌다지만 오히려 복잡해졌다. 건물 안에 도대체 몇 개의 점포가 하꼬방처럼 들어 차 있는 것일까? 익숙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내게는 방향도 알 수 없는 미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단 들어가면 늘 같은 문으로 나온 적이 없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쇼핑을 할 수 있다는 그 시장에서 삶의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 가끔 든다. 그럴 때 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갔던 그 시장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20191026,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