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2025년-2
핍 윌리엄스(2020), 서재인 역(2021). The Dictionary of lost words,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엘리.
1/3~1/12
579쪽의 길고 긴 소설
의미없이 눈물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아닐 거다. 눈물이 펑펑 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다. 알 수 없다. 긴 소설을 읽는 동안 2번이나 펑펑 울었다. 그 이유가 뭘까. 여전히 생각 중이다. 정리하고 다른 책을 읽고 싶은데 아직 다른 책으로 넘어가질 못한다.
장편소설 읽는 맛이 철철 넘친다. 소설가의 상상. 그 무한함에다 꼼꼼하고 촘촘하게 엮어낸 이야기의 기술이 더해져 엄청나게 탄탄한 이야기꾼에게 매료당한 기분이다. 긴 이야기를 들을 때 간혹 지루하게 만드는 어설픔이 없다. 간혹 스스로 손을 놓고 에즈미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가 디트의 가슴이 되었다가 리지의 안타까움을 같이 느끼다가 어느새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이었나 생각하다가 우리에게도 혹시 잃어버린 어휘가 없는지 답답해하는 순간도 맛보았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 편찬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19세기와 20세기초에 걸친 시간대에 (지금도 여전하지만)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여성으로서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단어들. 그러한 단어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던 사람들(지금이라고 다를 바 없지만) 속에 에즈미, 리지, 틸다, 디트와 베스. 위대한 여성들의 삶에 감사함을 전한다.
1886년 사전편찬이 시작되는 스크립토리엄에서 4살이 되기 시작한 연약하고 순수하고 보호가 당연하게 자라는 에즈미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정신을 잃은 어린 소년 버티를 돕는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한다. 그녀를 표현하는 단어의 변화를 정리해 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작년에 읽었던 <대온실수리보고서>, <하얼빈>, 드라마 <옷소매붉은끝동> 처럼 역사적 사실에 픽션을 가미해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이야기로 만드는 소설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너무 재밌게 만들어주고, 너무 슬프게 해 주고, 화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소설 읽는 이유를 굳이 들자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나 약자, 피정복자 등등은 남성이나 야만성을 띈 강자, 정복자들에 의해 자신을 잃고 동물적 본능적 존재 가치 이외에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여성은 아이를 나아 대를 이는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애낳는 도구 취급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이러한 사실이 아직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서 소설의 역할은 다만 읽는 사람의 즐거움에 국한되지 않는 무한한 능력을 갖는다.
언어를 사랑한다. 우리는 언어에 의해 존재되고 정의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그러나 언어에 의존해 존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어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상상하고 정의할 수 있는 존재라는 역자의 말에 완전히 공감한다. 따라서 언제나 숨지 말고 언어로서 자신을 나타내고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516쪽의 문장은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분은 부인이 참여하신 사전 편찬 작업도 알고 계시고, 부인의 특정한 전문적 지식이 자신의 언어치료 프로그램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십니다.' 이로서 에즈미는 남편을 잃은 아픔을 딛고 전쟁으로 영혼을 잃은 이들을 회복을 위해 옥스퍼드를 떠나 버티가 입원한 사우스샘프턴으로 간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소설을 읽는 동안 두번 울었다고 했다. 여전히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에즈미가 더 이상 연약한 여성이 아니라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인생과 운명을 선택해야 할 때 여전히 더 이상 곁에 없지만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자신의 단어로서 남편, 아빠 그리고 딸을 떠올리던 부분에서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울고 있었다. 울어도 시원해지지 않았지만 계속 눈물이 나왔다. 올해 읽는 두 번째 소설이었고, 너무 두꺼워 읽을 수 있으려나 걱정도 했었지만 좋은 시간이었음을. 읽은 책은 도서관에 반납해야 하지만 소장가치가 넘치는 책이었음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