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흐르는 강물처럼

Jeeum 2025. 1. 26. 20:53

셀리 리드(2023), 김보람 옮김(2023). 흐르는 강물처럼, 다산책방.

 

2025년 열한 번째 

1/26~ 

 

헤르만 헤세의 책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소설을 읽고 싶어 <흐르는 강물처럼>을 선택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용을 전혀 모르는 432쪽 분량의  두꺼운 소설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 세상을 돌아 나올 때쯤은 작가 이승우가 말했듯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나를 찾아 데리고 올 것이다. 

 

2025년 1월 설날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어 많이 움직였더니 다리가 무겁고 힘이 딸린다. 하루의 해가 잠시 어둠에게 자리를 내준 시간. 아직 어둠이 깊어지지 않은 시간 조용한 공간에서 읽기 시작하려 한다. 지금도 세상은 복잡하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 크다. 죄지은 자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벌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제자리를 돌려야 하는데 간단한 윤리의 일이 정치를 만나 너무 복잡한 길을 걸어간다. 솔직과 정직은 어디에 두고 있는지. 왜 우리들은 이런 시간을 건너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겠지. 더욱 긴 시간이 지나 멀리 떨어져야 제대로 보이겠지.   

 

월요일이지만 명절을 앞두고 있고, 지난 주 내내 봄날처럼 따뜻하던 날씨가 구름이 끼면서 이젠 비까지 내리고 있다. 밖이 어두울수록 실내는 점점 더 밝아진다. 어둠을 몰아내고 추위를 물리친 따뜻한 실내에 음악이 흐르면 이젠 뭔가 차분한 작업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제1장 1948년의 시작은 이랬다. 

 

참 볼품없는 남자였다.

적어도 첫 눈엔 그랬다. 

 

17살 토리(빅토리아)는 아이올라 중심 노스 노라와 메인스트리트가 교차하는 거리에서 운명의 인디언 윌(윌슨 문)을 만난다. 스스로도 운명 같은 순간이라 한다.  짧은 시선에 운명을 느꼈을까. 사랑을 느꼈을까. 두 젊은이(17살의 토리를 그저 젊은이라고 하는 게 지금의 내감각으로 이상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움직인다. 윌의 삶은 굴곡 투성이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도 느긋하고 태평할 수 있는 이상한 남자 윌에게 토리는 마냥 끌린다. 윌이  지난 삶을 떠나 새로 도착한 곳이 토리의 일상인 '아이올라'이다. 아이올라의 낡은 농가에서 나고 자란 토리는 사고로 오빠 캘러머스와 엄마를 잃었다. 한때는 말쑥했던 집이 낡고 무너져가는 동안 토리 가족의 삶은 새로움을 찾을 겨를도 없이 집과 함께 쇄락한다.  

 

어린 토리가 의지했던 엄마와 캘오빠, 비비 이모가 죽은 뒤, 동거인으로서의 역할만 남은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 살아간다. 외진 농가에는 할일도 많았을거다. 특히 지역 유일한 복숭아 과수원을 돌보는 것은 아빠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토리는 엄마의 역할을 물려받았다. 동생은 말썽만 일으키는 역할을 전쟁으로 다리를 잃고 비비의 친정에 남아있는지 모를 오그넌 이모부는 무슨 역할이었을까. 이렇게 넷이 아이올라의 토리 가족을 만들어 산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무슨 마음으로 바라보고 사랑했는지 모른다. 그저 역할만 남았다고 토리는 생각하고, 그것이 삶이라고 믿었다.

 

매일매일 같은 살던 중 노스노라 사거리에서 운명적으로 윌을 만났다. 오늘도 내일을 잊고 격정적으로 사랑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철처히 배척 당했던 시절에 토리는 윌을 만났다. 고통의 삶을 살았을 윌은 성숙하다. 괴롭히던 죽이려고 달려들던 마을 사람들을 피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도망치지 않는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거든."

 

그랬던 윌은 죽었다. 살해당했다. 토리는 세스가 그랬다고 생각했다. 토리는 임신을 숨기고 임신을 지키기 위해 가출했다. 높은 산 산막에서 자연인으로 아들을 낳았다. 아무리 야생이 좋아도 신생아를 키우기엔 거칠고 부족한 곳에서 도저히 살 수 없었다. 아이는 커녕 자신의 몸도 건사하지 못한다. 산을 내려온 토리는 한낮의 평화와 여유를 즐기는 부부의 차에 아이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무뚝뚝한 아버지 혼자 집을 지켰다. 아버지가 토리를 사랑한 방식을 이해했다. 아버지가 죽었다. 혼자 남았다. 미치광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사랑을 알려준 이웃 할머니 루비 앨리스와 그녀의 개들을 보살폈다. 

 

울진 않았다. 누군가 죽고 이별하는 곳에서도 울지 않았다. 왜 <흐르는 강물처럼, Go as a river> 인지 이해하지 못한채 계속 읽었다. 어느 순간 내가 읽는 게 아니라 소설이 나를 읽게 만들고 있었다. 당신은 강물의 모습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내게 강물은 그저 머물거나 흐른다. 때로 잔잔하게 흐르지만 거칠고 무섭게 흐를 때도 있다. 아무리 얕은 강이라도 맑아서 강바닥이 내다보이는 강이어도 강의 얼굴 속에 무엇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품고 있는지 거의 알 수 없다. 강의 입장에서 언제나 타자인 인간의 눈에 강의 그저 속을 감춘채 묵묵히 할 일을 한다. 바위에 부딪히고, 바람이 불어 파도가 만들어져도 그저 흘러간다. 그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머물 수 없는 것. 그게 우리의 인생인 것 처럼 강물처럼 흐른다는 의미는 그런 것이리라.

 

어린 토리는 이제 여인 빅토리아가 되었다. 빅토리아는 아빠를 보내고, 땅을 지키고, 루비 앨리스와 그녀의 개들을 지킨다. 마을이 수장된다는 소식에 굴하지 않고 복숭아 나무를 새로운 곳으로 옮겨 심는다. 옮겨간 땅에서 새로운 삶에 부딪힌다. 새로운 친구 젤다를 만난다. 피오니아에 나무처럼 정착한다. 빅토리아는 강물의 깊은 심연처럼 가슴에 자신의 얘기를 숨기고, 아들이 보고싶을 때마다 아들을 보낸 그 땅으로 가 아들의 나이 만큼의 돌을 하나씩 쌓아나간다.   

 

강물처럼 세월이 흐른다. 빅토리아의 삶은 그녀를 닮아 흐른다. 그러던 어느 날 바윗돌 위에 아들의 성장과 얘기가 담긴 잉가의 글이 날아든다. 아들의 행복과 고통, 그런 아들을 끝까지 보살펴준 잉가를 알게된다. 빅토리아 고민은 크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이 크다한들 어찌 아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땅처럼, 아들 루카스의 아버지 윌처럼 용기를 갖고 다시 아들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아들을 만나기로 한다. 1971년의 봄날. 블루메사 저수지에 선 잉가, 젤다 그리고 빅토리아. 그곳에서는 자신의 고향과 젊은 날이 물 속에 잠들어 있고, 아들을 낳은 빅 블루 야생지가 멀리 보인다. 아들에게 주려고 아침에 꺽어온 달콤한 향기가 나는 분홍색 복숭아꽃 가지를 들고 아들을 본다.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청년이 트럭에서 내리는 그 짧은 순간, 내 인생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 내가 그동안 뭔가를 끔찍하게 비극적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블랙 캐니언에 던져진 채 발견된 그 피투성이 시체는 사실 다른 소년이었고 윌은 살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루카스에요."

 

내가 아들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내 아들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자갈이 깔린 물가를 따라 내딛는 우리의 발걸음을 이 땅이 단단히 붙잡아 줄 거라고, 아들도 나도그렇게 믿고 있었다. (432쪽)  

 

 


 

루비 앨리스의 임종 장면이다. 루비 앨리스는 모두에게 오해받았던 미친 여자다. 토리의 엄마마저 이웃집 루비앨리스를 멀리했다. 그러나 토리는 아무도 모르게 루비앨리스를 위한 기도를 한다. 윌과 자신의 사랑을 이어준 루비앨리스를 빅토리아 끝까지 보살핀다. 삶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보살핀다. 어떤 관계이든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이토록 보살펴줄 수 있다면 빅토리아도 루비앨리스도 모두 잘 살아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프르스름한 손을 가슴에 포개고, 어깨 옆에 웅크린 개 한 마리, 그녀의 몸에 딱 붙어 잠자는 개 네 마리와 함께 누구나 바라는 모습으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의 삶과 죽임이 반가웠다. 루비앨리스의 삶은 너무나 기이하고 독특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내 인생과 겹쳐져 있었고, 루비앨리스의 죽음은 내가 겼은 유일한 호상이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나는 윌을 대신해 루비앨리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직이 속삭였다. 그리고 맹세컨대 분명 그녀의 영혼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280쪽)

 

목사님이 기도하는 동안 나는 고개를 숙여 묘에 참배했고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고했다. 새로운 삶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 동안 나는 지난날의 선택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의심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그건 윌이 가르쳐주고, 거니슨강이 가르쳐주고, 내가 생사의 갈림길을 수없이 마주했던 곳인 빅블루가 끊임없이 가르쳐준 진리였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내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걸 믿으력 최선을 다했다. 이 장례식을 끝으로 아이올라와 나 사이 인연의 끈이 끊길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곧 내 길을 떠날 것이다.(281쪽)

 

떠날 시간을 알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새로운  삶이란 항상 좋은 것일까. 준비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뜻이다. 새로운 삶이 주는 불안을 견뎌 기대를 채울 수 있어야 발을 디딜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1955년 새 땅 파오니아로 갔다. 서먹서먹하고 낯선 곳에서 불안한 잠이 들었지만 아이올라에 옮겨운 자신의 복숭아 나무들을 보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빅토리아에게 나무는 낯선 장소와 땅을 연결해주는 존재였다. 그 나무가 새로운 대지에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려나가는 것 처럼 빅토리아 새로운 삶을 받아들인다. 마치 흘러가는 강물처럼.

 

읽기를 마친다. 구글 지도로 찾아봐도 콜로라도는 문장으로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1948년 무렵 과거의 그곳은 더욱더 상상이 안되었고, 17살 소녀의 사랑으로 시작된 내용도 어색해 읽기 초반의 집중이 어려웠다. 그러나 약 20년의 세월 동안 소녀는 여인이 되어간다. 연휴의 읽기에 몰입하고 즐기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덕분에 아주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