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치
정한아(2024). 3월의 마치, 문학동네.
3/27~4/1
2025년 열아홉 번째 책
벽돌책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다가 다소 지루해 감정이 이입될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고팠다. 소설이 고팠다는 말이다. 마침 유튜브에서 따끈따끈한 신작을 출간한 정한아 작가의 소식을 들었다. 작가의 전작 <친밀한 이방인>을 매우 재밌게 읽었고, 드라마 <안나>도 역시 재밌게 봤기 때문에. 그랬던 작가의 신작이며, 인문학 서적의 깊이에 물려 시들시들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파고에 맞춤 맞게 나타난 것이 이 소설인 것이다. 하필 제목도 <마치>여서 3월이 가기 전에 얼른 읽고 싶었다.
먼저 한줄 평. 기대만큼 좋진 않았다. 그러나 전작 <친절한 이방인, 드라마 안나>처럼 시각적으로 드라마 영상으로 보면 매우 볼만할 것 같았다. 주인공 이마치 역에 누가 좋을까 생각하며 읽었다는.
이마치는 유명배우로 일중독이 되어 살았다(살 수밖에 없었는지도). 결혼도 했고, (그녀를 평생 아끼는) 애인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지만 무한히 불행했다. 아들을 잃었고, 아들을 잊지 못했고, 딸이 있었지만 딸은 그녀를 멀리했다. 불행한 유년을 보냈다.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았다. 잘 살고 싶어 치열했지만 결국 잘 살지 못했다고 느꼈다. 성인으로서의 삶은 화려했지만 스스로는 늘 불행했고 느슨했고 헐겁고 부족하고 외로웠다. 결국 오롯이 혼자가 된 60의 그녀는 이제 배우로서도 아웃사이더가 된다. 병이 찾아든다. 기억이 하나씩 사라져 간다. 기억을 잃지 않으려고 특별한 치료(VR 치료)를 받는다.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들고 한다. 치료를 받아야 했다. 특이한 치료는 지나 온 시간 속의 자신을 확인시켜 주었다. 불행했던 그래서 잊어버리고 싶었던 어린 시절, 결혼과 불륜, 아들의 실종 등 거쳐온 숫자 속에 거칠게 남아 있는 삶의 마디마디. 그때 자기가 어떠했는지 타인이 되어 지켜본다. 그리고 마지막은 현재.
페이스트리처럼 겹겹히 쌓인 과거(99면). 그렇게 겹겹이 존재한다고 생각지 못하고 무심코 살아버린 무수한 날들. 과연 몇 겹이나 존재할지. 때가 끼고 먼지도 묻어 누군가 걷어주지 않으면 존재도 없을 과거. 누군가의 일생. 하나밖에 없어 아련한 생.
가끔 누구나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이마치가 되어 토끼굴의 앨리스가 되어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면 거기에 행이 있을지 끔찍한 불행이 있을지 두렵지만. 웃었던 시간을 기대하고 정리하고 생을 마무리하고 싶어지지는 않을까. 아직 어린 작가가 마치 60세가 된 것처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 남아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다가 올 미래를 생각하고 ,남아있는 시간이 짧은 노인들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싫지만 그럴 수밖에 없이 시간이 남아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