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um 2025. 5. 4. 08:21

최진영(2024). 원도, 한겨레출판.

 

4/28~ 5/3

2025년 스물여섯 번째 책

 

<나는 왜 죽지 않았던가(2013)> 의 전면 개정판이라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37쪽을 읽었다.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싶다. 개양아치, 살인자, 노숙자, 도망자, 철면피의  무도덕인 인간 말종이 주인공이라니. 최진영 작가는 이런 <원도>를 통해 대체 뭘 말하고 싶은지......

 

계속 읽는다. 이상하다. 점점 원도가 불쌍해진다. 애처로움이 솟아 나온다. 누가, 대체, 왜, 애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아니면 이렇게 되었을까. 원래 이런 인간이란 없는 거니까. 살면서 대체 뭐가) 생각하게 된다. 원도는 말을 제대로 못 한다.  원도는 실제 일어난 일(행동과 말)과 자신 속에 내재된 것(의도, 마음, 생각) 간의 차이(간극)가 너무 크다. 이런 걸 삐딱하다고 하나. 원도는 제대로 말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경험하지 못했다).  안타깝다. 

 

버려지기 싫었다. 내 것이라 믿는 것을 타인에게 뺏기지 않는 것. 원도의 말과 행동을 지배하는 공식은 그뿐이었다. 하지만 원도는 그것을 몰랐다. 혹은 모른 척 했다.(52쪽)

 

자라면서 원도는 폭력을 당했다. 원도는 이유를 모른 채 그저 그렇게 일상화된 폭력을 겪는다. 원도가 이런 아이가 된 이유일까.  믿어주지 않았다. 원도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와 무한히 비교당했다. 맞았다. 자유 선택을 말하지만 선택도 자유도 없었다. 잘못만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산 아버지가 손을 뻗어 원도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아버지의 누런 희자위 한가운데에 크고 검은 구명이 뚫려있었다. 그 구멍 속에, 작고 하얀 원도가 어깨를 오그린 채 무릎을 꿇고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73쪽)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원도는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원도를 지칭하는 형용사가 너무 많았다. 단어에 갇혀 그렇게 되어갔다. 그런 생각만을 하게 되었다. 한때 제대로 살아보고자 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알뜰한, 게으른, 성실한, 똑똑한, 무식한, 사려 깊은, 부지런한, 친절한, 둔한, 멍청한, 술을 잘 마시는, 술을 못 마시는, 거만한, 수줍은, 신경질적인, 냉정한, 용감한, 무책임한, 충동적인, 경솔한, 밝히는, 예민한, 수다스러운, 건강한, 허약한, 미숙한, 가식적인, 명석한, 우유부단한, 욕심 많은, 과감한, 집착하는, 음흉한, 단순한, 비겁한, 소심한, 정직한, 이타적인, 이기적인 원도(122면)

 

그렇게 살아. 그렇게만 살아. 그래야 당신 답지. 그게 바로 당신이지(127쪽) 

 

원도는 이런 말들을 듣고 살았다. 사랑받고 싶었다. 기억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사랑이 필요했다. 엄마 품이 전부였던 세 살. 엄마 품에서 과시하듯 울고 싶었다. 그런 기억이 없다. 잘못된 부모의 행동. 잘못된 애착. 인간에 대한 신뢰감은커녕 자신에 대한 믿음의 싹조차 갖지 못했던 아득한 날들. 

 

작가는 말한다. 절판되고자 했던 책을 다시 내어놓으며 말한다.

 

"어쨌든 나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호소. 그것을 전하려고 계속 소설을 쓰는 것만 같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계속 사랑해도 되는가?'라는 문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도는 죽고 싶다. 수많은 죽음을 생각한다. 도처에 죽음은 널려있는데 여전히 죽지 못하는 자신이 있다. 그저 "무심코 살아버린 무수한 날뿐이다."라고 말한다. 가슴이 쿵하는 떨어졌다. 원도가 나였다. 원도를 만났다. 원도와 스쳐갔다. 원도를 모른 채 스쳐가곤 원도를 알고 뒤돌아본다. 원도의 말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원도는 너무 멀리 있다. 진작에 귀 기울여주었어야 했다. 원도는 죽지도 못한 채 떠돈다.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가. 마지막 한끝일지도 모를 삶과 죽음. 나는 원도이고 원도가 나였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작가가 <나는 왜 죽지 않았던가>를 탈고하면서 들었다던 노래.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 네가 여기 있기를 바래. 원도도 우리들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