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TRIP

제주 올레 15-B

Jeeum 2020. 3. 11. 22:31


알람이 울리지 않는다.

컴컴한 어둠에서 벗어날 듯 벌떡 일어났다. 6시다,

무거운 커튼을 젖히니 거리가 촉촉하다.

가볍지만 이미 비는 내리고 있었다.


7시, 12층 카페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모든 음식이 깔끔하고 신선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여기는 신라 스테이 in 제주 





8시를 조금 넘겨 체크아웃을 하고,

촉촉해진 도로를 달려 고내포구로 향했다.


걷기 초보인 두사람 모두 오늘의 걷기에 반신반의했다.

원래의 계획은 종점인 고내포구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출발점인 한림항으로 대중 교통을 타고 가서

한림항에서 고내포구까지 13킬로 걷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가 계속 내리는 탓에 걷다 그만 둘지 알 수 없어

고내포구 부터 거꾸로 걷기로 했다.

    




또 하나의 스탬프를 찍는 기분이 쏠쏠하다.


여기는 15코스의 종점이자 16코스의 시작점.

고내포구, 간세 뒤로 CU가 보인다.

여기서 우연히 발견한 마스크^^

왠 복인가 싶어 얼른 샀다. 득템^^


다이소에서 산 회색빛 판초 겸 비옷을 입고

일단 걷기 시작.  자! 이제 화이팅 해봅시다.


팔각정 길에서

바다를 뒤로 하고, 바로 마을길로 들어선다.

제주의 돌담이 먼저 인사를 한다. 반가워! 


 

봄을 알리는 꽃들이 검은 곰보 돌들 사이에서 당당하다.

돌담 안 마당의 목련이 금방이라도 잎새를 벌릴 듯 부풀어 올라 있다.


비는 여전하다.


촉촉히 제주의 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바다와 함께 걸을 것이라 기대를 했더니 생각보다 바다가 아득하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더니

어느새 애월항이 눈에 들어 온다.


마을길에서

바다를 다시 만날 때까지

애월중, 초등학교 뒷길을 지나

 파종을 기다리는 잘 정리된 붉은 밭,

유채꽃발,

 야채 걷이가 끝나 기분좋은 밭

애월진성

그리고 

아기자기 동네 가게들.


비가 오니 사진을 찍기도 매우 번거롭다.






 소중한 것들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법이다.

언제나

가까우면 다정해서 좋고,

멀어지면 그리워서 좋으니까


바다에서 다시 멀어져

밭길을 따라 걷는다.

 주룩주룩, 초록초록

꽃들이, 풀들이, 곡식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렇게 비가를 맞으며 걷는 동안 우리에게도

초록초록 생기가 차오르겠지^^


언덕위로 멋진 집


돌담엔 강인해 보이는 선인장에 꽃이 피어있다.

선인장에 별 관심이 없는 나와 달리 친구는 선인장을 좋아한다.

못생긴 얼굴에 올록볼록 피어오른 것이

열매인지 꽃인지 애매한데

친구는  

그 붉은 열매가 대견한 듯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반면에 나는

바다를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낮은 돌담 위에 이쁘게 피어있는 꽃들이 사랑스럽다.

이렇게 사랑스런 꽃들을 심어놓은 집주인이

어디선가 친절한 표정으로 내다보고 있을 듯하다.


꽃들과 함께 있어

토끼도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바다를 찾아 걷는 친구의 뒷모습이

당당해서 아름답다.


오른쪽으로 꺽으라는 붉은 깃발을 따라 걷는다.

이제 바다가 코앞으로 달려온다.


<하이제주>라는 복합공간이 오른쪽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뒤로 바다와 함께 평행으로 늘어서 있다.


드디어 한담해안 산책로의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이제 겨우 약 4킬로를 걸었다.





젊음의 길에서는 좀더 힘을 내어 걸어보자.


비가 좀더 거세졌다.

 판초를 여미고 일단 가보자.

가다보면 멈출지 그냥 갈지 결판이 날테니까.

이조차 즐거움이 아니면 무엇이랴?

인생 별거 있나?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거지


금방 GD 카페에 도착했다. 바닷가 정자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COVID 19 탓인지, 아님 비바람 탓인지

인적이 드물다.

이런 한담해변은 처음이다.

언제는 2030으로 버글거리는 동네였다.


정자에서 판초를 입은 채 기념사진 한장씩



 

언제 걸어도 좋은 길이다.

오른쪽으로 옥빛 바다가 빗물과 함께 놀고있다.

빗줄기들이 바다를 만날 때는 주파수가 다양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들은 모여 하모니를 이루며

바쁜 나그네의 걸음을 붙잡는다.

그냥 갈 수 없다.

노란 빛깔 <봄날카페>가 금새 다가온다.


안녕. 멘드롱 또똣


어디선가 날아오는 커피향


귀와 눈  그리고 코마저 행복한 이 곳은 한담마을


역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다시 걷는다. <장한철 산책로>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산과 바람, 바다가 만들어낸 제각각의 바위들이다채롭다 못해 맘대로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돌을 쌓아

소망을 새기는 소박한 행동 뿐.


이제 바다에는 모래가 섞여 보인다.

곧 곽지 해수욕장이라는 표시이다.








부드럽게 하늘을 향해 선 나무 끝에

잠시 몸을 쉬는 갈매기가 솟대가 되어 있다.

 

반갑다. 얘들아.



드디어 곽지 과물해수욕장


피로를 풀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데

그래서 반드시 맨발로 백사장을 걸으라는데

오늘은 도저히 양말을 벗고 들어가기가 그렇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갈길은 바쁘고

이런 핑게를 언제까지 댈 수 있을지는 알수 없다.

 <과물>이란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땅속 깊이 스며들어

거르고 걸러진 다음

다시 땅으로 솟아나는 달콤하고 맑은 물.


곽지 해수욕장 한편에 <과물 노천탕> 늠름하게 서있다.

그 담대함에 기가 죽는다.




애월빵공장 등등

이쁜 가게들을 지나

15-B코스의 중간, 금성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도착한다.


또다시 스탬프 하나 추가

We're HAPPY^^.





이제 슬슬 배가 고프다.

보말칼국수가 먹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나타나 줄지 모르겠다.


조금 더 걸어보자.

지금부터는 바닷가 굵은 돌길을 걸어야 했다.

역시 잘 닦여진 길보다 울퉁불퉁 거친 길에서는 조금만 걸어도 피곤하다.

친구의 얼굴에도 배가 고파서인지 피로가 드러나있다.

무엇인가 먹어야 할 때다.


도로로 나가면 무엇인가 있겠지?

보말국수가 아니어도 좋아. 무엇이든 먹어야 해.


거세진 비를 뚫고 도로로 나서니 건너편에

<폴 앤 메리> 미국서부 가정식이란 간판이 보인다.

제주식 음식이 아니라

미국식 가정식이라니

뭔가 이상했지만

당장 배고픔을 달래기에는 흑돼지 돈까스도 파스타도 과분했다.

 

그러나

<폴 앤 메리>의 음식은 기대 이상 훌륭했다.

너무나 맛있게 먹고, 즐겼다.


이럴 때는 이말을 꼭 해야 한다.

서양식 동네 밥집. 대박!!!!!!









배부르게 먹고 나서니 다행스럽게 비가 그쳤다.

판초를 털어 가방에 넣으니 몸이 가벼워졌다.

다시 길을 건너니 골목 안쪽 멀리 보이는 바다가

너무 좋아 보인다.




바다로 바싹 붙어 걷는다.

여기는 귀덕이다.


한수풀 해녀학교를 지났다.

여기까지 9킬로. 이제 4킬로 밖에 남지 않았다.






켄싱턴 리조트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꺽어 마을을 향한다.


이제 우리는 밭길을 걷는다.

나즈막한 돌담을 경계로

양배추밭이 끝도 없다.

돌아래는 완두콩 넝쿨에 낯선 꽃들이 정겹게 피어있다.


자연 속에서 다시 사람 사는 세상의 품으로 성큼 들어서는 듯하다.






 

돌담 위에 다소곳한 놓인 소주병이 몹시 다정하다.

 

 

농로가 끝나는 곳은 수원리

왼쪽으로 수원마을 사무소가 있다.

화장실이 급해 들어갔지만

COVID 19로 꼭꼭 문이 닫혀 있다.

소변을 참고 열심히 종점을 향해 걸었다.

마을길이 끝나는 곳,

대수포구가 보이는 곳에서 공용화장실이 나왔다.

야! 반갑다.






멀리 비양도가 보인다.

이제 곧 한림항이다.



대수포구에는 갈매기와 기러기 솟대가 외롭게 서있다.

이제 종점이 멀지 않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말을 거는 듯하다.



곧게 뻗은 넓은 길을 걷는다.

죽 뻗은 이 길의 끝에도 바다가 있겠지.




무사히 한림항에 도착했다.

비양도행 선착장 골목 입구에 서있는

파란 간세가 너무 반갑다.







스탬프를 찍고 친구와 크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친구와 함께 하는

2020년 두번째 제주 올레 걷기도

이렇게 무사히 끝이 났다.


바다, 하늘, 바람, 그리고 비가 함께한 13킬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한림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