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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렇게/읽기의 즐거움

우리 세희

Jeeum 2026. 10. 27. 06:17

2026- 71

 

조해진(2026). 우리 세희, 현대문학.

10/14~10/19

 

유니가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삼랑진 그집의 밥이 먹고 싶다고.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그럴 땐 가야 하고 먹어야지. 못 갈 이유가 없지. 기차를 타자고 했다. 편안한 자동차가 아니라 고모가 출근하던 시절에 했던 대로 기차를 타자고. 수담으로 갔다. 여전히 단일 메뉴 9,000원 백반. 왜 그집밥은 늘 맛있는 것인지. 집밥에 허기진 20대와 60대가 배불리 먹었다.

 

짧은 기차여행에 <우리세희>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만 보고는 청소년이 주인공이려니 싶은데 재일 자이니치에 관한 짧은 소설이었다. 세희는 연주의 엄마다. 세희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희 그리고 지금을 사는 딸 연주의 이야기. 그리고 세희를 우리 새희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인생이고 삶이다. 이야기가 기쁨이나 행복만으로 가득 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슬프고 아프고 잔인한 이야기가 좀더 많은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우리 세희는 그런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여러 번 울컥거리고, 찔끔거렸다. 

 


 

엄마는 담배를 피우는 골목에서 나는 잔쯕 주눅이 든 채 내 발등만 내려다보곤 했다. 냄새 배니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엄마는 타일렀지만 엄마로부터 아부 멀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다거나 혹은 오가는 누군가가 시비를 걸어올까 봐 무섭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이 생기면 내가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는 순간 고개를 들어 엄마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엄마는 콧잔등을 찡긋하며 그저 말없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이해해달라는 듯이, 내편은 너뿐이라는 걸 알아달라는 듯이.(26쪽)

 

선생님에게서 이미 여러 번 들은 레퍼토리였지만 나는 전혀 들은 적 없다는 듯 선생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선생님에게 말을 멈추지 말아 달라고, 더, 더, 들려달라고 조르고도 싶었다. 엄마에 관한 모든 조각들을 힘껏 끌어 안는 것, 내가 엄마 없는 삶의 출발선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뿐이었으니까.(37쪽)

 

그들이 내게서 멀어질 때에야 나는 벽에 한 손을 짚으며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들은 곧 밤안개 속으로 스며들었고 내 시야에서도 사라졌다. 나는 안도했다. 안도하고 또 안도했다. 아늑했던 안도감은, 그러나 이내 차가운 돌덩어리 같은 감정으로 변성됐다. 그 감정의 정체는 명백한 고통의 말을 듣고도 몸을 움츠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스스로를 향한 분노, 그러니까 모멸감이었다.(42쪽) 

 

센세는 정말로 신기한 경험을 한 아이처럼 말했다. 감정에 충실하기보다 감정이 제거된 현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 추상적인 슬픔이나 절망은 덜어내고 획득 가능한 낙관은 얹어 가는 것, 그것이 센세다운 모습이긴 했다. 어떤 면에서는 선생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성적이었다. 정작 이성적이고 싶어 했던 선생님은 자신의 상처와 애완에 늘 먼저 넘어졌고 넘어진 상태로 수없이 감정을 정제한 후에야 조그씩 이성을 찾아가는 사람이었다.(54쪽)

 

엄마가 외할머니 뱃속에서 세포를 늘리고 장기를 완성해가던 어느 날, 외할머니는 동네 세탁소 담벼락 밑에서 세이지를 발견했다고 했다. 씨앗을 뿌린 이도, 물을 주며 가꾼 이도 없는데 다홍색 세이지 몇 송이는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외할머니는 쭈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세이지를 들여다보다가 넉 달 후 여자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에 '세'라는 글자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뒤에 '희'를 넣어 세희를 완성한 사람은 외할아버지였다. 세이지의 꽃말은 '구원', 그러니까 '세희'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스스로를 구원하면서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히로코가 그저 몸에 맞는 옷이라면 세희는 보호막  같은 옷에 가까웠다고 엄마는 말했다.(96쪽)

 

주사를 맞고 몽롱해하던 엄마가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우리 오마니와 아바이, 그리고 오빠를......."

"....."

"잊지 말아줄래?"

물으며 엄마는 밀려오는 약기운에 투항하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잊지 않아.....

잠든 엄마 곁에 않아 그렇게 되뇌던 그때처럼, 3년여가 흐른 지금,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가만히 속삭였다. 불러보고도 싶었다. 

세희야,라고.

우리 세희야.

내 손을 맞잡으며 엄마를 찾던 요양원의 외할머니처럼.

"아이타이, 엄마......"

말하고 나니 더, 더 간절히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눈동자의 질감, 업혔을 때 전해지던 숨결의 냄새와 섬약한 뼈의 감촉, 내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는 동안 집중하던 얼굴과 미간 주름의 무늬까지 모두......

추웠다.(100~101쪽)

 

교환학생 시절, 선생님의 차를 타고 외가댁을 방문한 날이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감격스러워하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곧 늦은 식사가 마련됐고, 우리 네 사람은 한국식 상에 무릎을 맞대고 앉아 흰밥과 미역국, 갈치조림, 여러 종류의 나물과 김치를 함께 먹었다.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무당벌레가 들어온 것을 발견한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벌레가 그 위로 올라오도록 유인한 뒤 창밖으로 조심스럽게 내보내주었다. 나와 함께 선생님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던 외할머니가 씩씩한 말투로 말했다.

"고놈, 은인을 만났구나야. 기래도 살 팔자였던 게지."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녀석은 알아서 집을 찾아갈 거라고, 도착한 곳이 녀석의 집이 되고 고향도 되는 거라고,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그 말에 외할아버지와 선생님, 그리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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