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16

코로나 바이러스 19

코로나 19는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고 있다. 16주 만에 겨우 기말고사를 치기 위해 대학생들이 등교를 한다. 그나마도 시험만 치고 나면 다시 이별이다. 세상이 병균 때문에 바뀌고 있다. 그저 보통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이 아득한 날이 되었다. 참으로 별일이다. 비실거리고 적막했던 캠퍼스에 학생들이 북적거렸다. 마스크가 꼭 필요할 만큼 눈에 뵈지 않는 불안이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학생이 있는 학교는 생기가 넘친다. 장맛비로 더운 공기가 물러난 유월의 한가운데 짙어진 구름만 한 선선한 바람이 몰려든다. 크고 작은 학생들의 움직임이 여기저기 날아서 마치 무색의 공기를 연주하듯 기분 좋은 하모니를 이룬다. 그들의 버릇없는 수군거림마저 삭막했던 공간 사이사이에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불과 일주일이지만 나의 하루..

사랑은 돌아오는거야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이상한 출근이었다. 일찌감치 채비를 하고, 갖고 가야 할 물건도 잘 챙겼다. 음식물 쓰레기 봉지도 잘 묶어 현관 앞에 내놓았다.. 노트북 전용선, 안경, 마스크, 휴대폰, 음식물 처리용 카드 등등 엄마가 없는 공간에서는 시간이 많아졌다. 덤으로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출근에 허둥대지 않게 되었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느긋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자동차 키가 없다는 것을 그제서 발견했다. 양손의 짐을 그대로 들고 가서 열쇠를 챙겨 왔다. 차를 몰고 나가다 휴대폰이 없음을 알았다. 또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뒤져도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히 잘 챙긴 듯한데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여유가 지나치게 넘쳐 무심히 지나온 조금 전의 시간을 조각내 돌려보았다..

하루키, 하루키

소설가 김형경은 그(이)렇게 말했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노이로제 이고, 아무 것도 아닌 말에 상처 입는 게 콤플렉스 이 듯, 그 사람이 선택하는 단어가 당사자의 상처였다.’라고 몇 년 전의 독서 노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꽂힌 말이 지금껏 내 속에 박혀 있다. 순간에 박힐 만큼 강렬했다. 이후 지인들을 관찰하며(죄송스럽지만) 되풀이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작 자신의 상처라는 것을. 도서관의 반납 독촉에 밀려 방학 전 마구잡이로 빌려두고 이런저런 이유로 읽기를 미루어 둔 책을 몰아서 읽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작가라 말하진 않는다. 그의 소설이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이다. 냉철하고 섬세한 표현에 감탄하기는 하지만 소장 가치를..

수필(피천득)

수필금아 피천득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

희망을 찾아서

희망을 찾아서 박미혜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노래를 한다.” 삶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옷을 고르고, 장을 봐서 먹는 사소한 일이나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계절을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괜히 나만 처지고 바보인 듯 한 그런 때가 있다. 지난 한주, 시작부터 토요일까지 일이 많아 버거웠다. 체력의 한계를 넘는 것 같았다. 아프면 큰일이었다. 봄부터 계속 게으름을 피우느라 미뤄둔 일을 실적 평가 때문에 급히 마무리 짓느라 허둥댔다. ‘진작 해 둘 걸’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게으른 사람은 항상 석양에 바쁘다. 그러느라 지쳐버렸다. 얼마 전 뛰어난 외모와 재능으로 TV에 자주 보이던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삶을 끊었다. 페이스북을 하다 자유분방한 그녀의 모습이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

착각도 가지가지

착각도 가지가지 작은 거미 한 마리가 핸들에 집을 짓고 있다. 운전을 한참 하고서야 겨우 알았다. 자그마한 거미여서 징그럽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자연을 마다하고 하필 남의 자동차 핸들에다 집을 짓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터라 녀석이 실로 집을 짓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한참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성실한 초등학생 같은 모습이 측은하기도 했다. 하필 이 곳일까? 살 곳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휴게소까지 잘 데리고 가서 고이 내려 주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터전을 착각한 거미에게 세상은 의도치 않게 잔인했다. 휴게소로 들어서느라 핸들을 우측으로 돌리는 순간 중력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거미는 떨어지고 말았다. 차를 세운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져 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건물 안 시장

건물 안 시장 조금 전에 봤던 그 옷가게를 찾고 있다. 분명 이 쯤에 있어야 하는데 사라졌다. 서문시장 4지구 지하층, 같은 길을 이리저리 벌써 몇 번째 돌고 또 돌고 있다. 찜했던 원피스를 사고 싶은데 도대체 가게가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돌아도 왼쪽으로 돌아도 비슷한 가게들만 계속될 뿐이다. 다시 1층으로 돌아가 복기하듯 걸어 봐도…… 작정하고 숨어서 어디 제대로 찾는지 보려는 듯 가는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게마다 딸려 있던 번호나 아니면 이름이라도 기억했어야 했다. 시장을 자주 찾지 않는 사람이니 요령이 있을 턱이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서문시장 지하에 예쁜 여름 원피스가 많다고 지인이 말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단다. 여름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물 목록에 ‘..

내 인생의 부록 : 구상 중

내 인생의 부록 : 구상 중 초가을 아침 햇살이 토요일 아침을 깨운다. 작은 내 서가에 꽂힌 책들을 무심히 둘러본다. 키 다른 책 사이로 어울리지 않는 잡지가 눈에 띈다. 미세한 먼지가 묻어나는 그것을 꺼내 본다. 이것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버리지 못하고 꽂아둔 이유가 아득하다. 신년 가계부를 얻으려고 여성지 신년호를 기필코 샀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나 석 달도 채우지 못하고 버리기 일쑤였던 가계부를 그저 갖겠다고 기를 썼다. 돈을 주고 기꺼이 살만큼 즐겨보지도 않으면서 본 책보다 부록인 가계부가 탐이 나서 매년 어김없이 사곤 했다. 신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갖기 위해 스티커의 수를 헤아리며 별다방 커피를 열심히 마시는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부록은 책이나 잡지에 딸려오는 덤 같은 존재이다. 가끔 그 ..

가족 그리고 친구

가족 그리고 친구 2007년 1월 2일, 바람 시리던 날, 깊어진 병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가 멀리 가셨다. 사는 동안 자신의 고집대로 하신 탓에 아버지는 자주 엄마를 힘들게 했다. 당연히 부부간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버지가 안계시면 엄마가 오히려 밝은 일상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할 만큼. 그해 겨울, 삼형제는 소박한 정성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49제까지 모두 마쳤다. 겨울바람이 잔잔해졌다. 거실로 들어서는 햇빛이 봄이 오고 있음을 전해주었다. 내일이면 개학이다. 겨울방학동안 집안일을 핑계로 겨울잠을 자듯이 엄마와 함께 집에만 있었다. 내일부터 이제 바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3월 1일, 아침을 먹고 조카들과 따뜻한 햇살 속에 뒹굴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말을 꺼냈다. “내일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