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아서
박미혜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노래를 한다.”
삶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옷을 고르고, 장을 봐서 먹는 사소한 일이나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계절을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괜히 나만 처지고 바보인 듯 한 그런 때가 있다.
지난 한주, 시작부터 토요일까지 일이 많아 버거웠다. 체력의 한계를 넘는 것 같았다. 아프면 큰일이었다. 봄부터 계속 게으름을 피우느라 미뤄둔 일을 실적 평가 때문에 급히 마무리 짓느라 허둥댔다. ‘진작 해 둘 걸’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게으른 사람은 항상 석양에 바쁘다. 그러느라 지쳐버렸다.
얼마 전 뛰어난 외모와 재능으로 TV에 자주 보이던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삶을 끊었다. 페이스북을 하다 자유분방한 그녀의 모습이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것을 본 기억도 있다. 그녀가 죽고 나서 어린 나이부터 치열한 그 세상에서 살았고, 다소 넘치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오래 우울증을 앓았다는 뉴스도 들었다. 그녀를 향한 심한 악플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해석도 있었다. 그저 아깝다. 사람이 스스로 가치나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무엇을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비난과 조롱이 섞인 말이 흘러들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관계가 줄어들고, 행동이 좁아지고 움츠러들다 못해 병이 된다. 그러다 아까운 삶을 저버리기도 한다.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할 때, 모든 게 귀찮아지기 시작할 때, 그것이 마음의 병을 만들려고 할 때. 우리는 멈춰야 한다. 쉬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위로를 받아야 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희망이라도 파랑새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단어지만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잠시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허둥대던 한 주의 끝, 금요일 저녁 도저히 짬을 날 것 같지 않던 시간에 나는 김해에서 해운대로 넘어갔다. 넘치는 퇴근길의 차들을 지나 허리가 뻐근하도록 달려 마린시티에 도착했다. ‘청각장애 합창단. 아이소리앙상블 제4회 정기연주회’를 같이 하러……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공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친 나를 달래 줄 아름다운 음악을 굳이 기대하진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그랬다. 스무 명 정도의 아이들은 제각기 정확한 음정의 꼭짓점을 찾을 듯 했지만 아슬아슬 자주 놓쳐버리고 말았다. 짧고 긴 박자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섬세한 노래의 멜로디는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착용한 청각장애 아이들의 작은 입을 거쳐 나오면서 조금은 무심하고 단조로워졌다.
선천적으로 청각의 장애를 갖는 아이들은 대부분 보청기나 인공와우라는 보장구를 착용한다. 특히 ‘인공와우’란 달팽이관이 아파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술을 받고 사용하는 임플란트 식의 보장구이다. 인공와우를 하면 거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재활훈련을 받으면 소통을 충분히 할 만큼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원래의 달팽이관 속 수 만 개의 유모세포가 하는 기능을 아무리 성능좋은 인공와우라도 따라가지 못한다. 때문에 청각장애 아이들이 음정이나 박자를 정확하게 맞추어 노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넓고 화려한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안도감, 기쁨, 대견함, 아픔, 벅참 등 알 수 없는 수만 가지의 감정이 아이들의 노래와 더불어 춤을 추 듯 공간을 흘러 다녔다. 누군가의 장애를 혹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면 참으로 나쁘다고 하겠지만 오랫동안 청각장애 아이들과 공부하며 살아온 내게 그들이 만들어내는 노랫소리는 위안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큰 용기를 주었다.
오지랖이지만 목숨을 끓을 만큼 힘들었던 그녀도 이 순간을 함께 했더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녀도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희망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번 공연의 주제는 ‘희망을 찾아서; Finding Hope’이다. 아이들이 희망을 찾기 위해 보낸 시간들이 노랫소리와 함께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단조롭고 거칠지만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간절한 노랫말과 함께 어우러져 내 가슴으로 날아왔다가 다시 모두의 영혼으로 옮겨나갔다.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얼굴에 행복과 기쁨의 파동이 일고, 큰 진폭으로 공명되어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내는 하모니가 하늘 높이 날아서 천국까지 퍼지고 퍼졌으면 하고 그저 바랐다. (2019년 11월 10일, 일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