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일기 10

2023.02.16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새로운 일을 맡고 느닷없는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생각도 몸도 적응하지 못한 채 뇌세포만 예민해져 있다. 지극히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밤잠을 못자도 일어나는 시간은 동일하다. 지정된 시간에 알람이 울리지만 몸은 미리 알고 움직이고 뇌세포도 알아서 움직인다. 당연히 눈이 뻑뻑하다. 평화롭지 못하고, 안정감도 안녕감도 떨어진다. 오늘은 외부에서 일을 본다. 오래전 약속된 사소하지만 사는 데 필요한 일상다반사 몇 건을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생각이 일과 분리된 것은 아니다. 진하게 차를 우려 마신다. 따뜻한 온기가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 마음까지 따뜻함이 전달되어 녹녹해지길 소망한다. 향을 피운다. 공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피우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향은..

한줄 일기 2023.02.16

2023.02.11

방학을 핑계 삼아, 난데없는 본부 보직발령을 빌미 삼아 며칠을 쉬었더니 요일 감각이 둔해졌다. 무심한 가운데 시간은 차곡차곡 성실하다. 마음을 실지 않고 책과 영화 그리고 걷는 것. 이렇게 살다 보니 잠시 두렵고 어지러웠던 마음에 아주 조금씩 평화가 찾아들고 있다. 앞서 걸었던 선배들의 말도 용기를 주었다. 간식으로 먹으려고 고구마 하나를 냄비에 찌다 영화 를 보았다. 영화의 처절한 모정에 빠져들었다. 가스레인지 경고음이 나고서야 콧구멍 속에 탄내가 진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생각과 현실 사이를 무난하게 무사하게 왔다갔다는 하는 일이 이렇게 서툴다. 토요일 아침 나의 집에는 진하고 고소하지만 엄청난 탄내가 진동한다. 환풍기와 공기청정기 만이 열일하고 있다. 미안하다.

한줄 일기 2023.02.11

2023.01.24

이모가 세상을 떠났다. 이모를 마지막으로 엄마의 형제 자매들은 더이상 우리곁에 없다.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만나 그들의 시간을 살고 있을 것 같다. 알고보니 이모도 엄마만큼 많이 힘들었다. 조실부모한 집에서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지만 응석 한번 제대로 부려보지 못한 채 깡촌으로 시집가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 남편은 자상하지 못했다. 두딸과 아들하나는 두었지만 딸 하나가 먼저 세상을 저버렸다. 성장하면서도 어른이 되어서도그때그때 해야할 발달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슴아픈 일들을 품고, 그것을 해소하지 못한 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십년전 쯤, 형제들이 모두 떠나고 언니(울 엄마)와 자신 단둘이 남았을 때, 이모가 먼저 엄마를 찾아 먼길을 왔다. 그때부터 엄마와 이모가 왕래를 했고, 덕분은 우리들도..

한줄 일기 2023.01.24

2023.01.20

며칠 전 '상담기법' 연수도, 지금 읽고 있는 책의 문장도..... 자꾸 사람을 작아지게 만든다. 반성하게 만든다. 잘못 살아왔다고 잘못 살고 있다고 꾸짖고 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야 끝나는 싸움처럼 잘못은 인정하고 있다. 인정하고 나니 지금까지의 시간이 무너지려 한다. 이제부터 나는 잘 회복할 수 있을까. 무너져 버린 세월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건강하게 제대로 다시 쌓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두렵고 무서워 감추고 싶어 진다. 잘못을 알면서도...... 내가 가엾다.

한줄 일기 2023.01.21

2023.01.12

제주 삼다수 숲길을 걸었습니다. 5.2킬로의 길지 않을 길도 세 가지의 색이 보였습니다. 변치 않는 약속 같은 세월을 고집하며 연초록 이끼와 공생하는 길 조릿대의 풋풋함과 한때는 뜨거웠을 용암 위로 녹지 않는 눈 눈의 몸부림, 바삭거림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이어지는 곧게 뻗은 길 길을 걷는 것은 우리의 숙제 오늘도 나는 오늘의 숙제를 잘했습니다. 함께 해준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한줄 일기 2023.01.15

2016년의 기록

글쓰기는 창조가 아니라 모방이다. 완전히 새로운 모방. 10대는 해맑음 20대는 혼돈 30대는 막무가내 정열 40대는 찬란 속에 슬픔 50대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머지는 과연 어떨지...... 오랫동안 같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다 보면 수많은 사연이 맺히고 맺힌다. 오늘도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전설처럼 영근 은행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한꺼번에 수많은 얘기가 허공에 흩어진다. 잠시 후 도착할 낯선 간이역에도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제 모습만큼의 표정을 지닌 사람들이 타고 내릴 것이다. 겨울 아침, 움직임을 거부하는 이른 시간. 어제의 피곤이 질질 끌리듯 따라온다. 흐릿한 사각 창 너머 어지러운 바람의 물살의 의지와 관계없이 날아다닌다. 지금 가슴이 울리는 것은 귀로 들리는 음률이 내 조각난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