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8

사랑의 생애

이승우(2017), 사랑의 생애, 위즈덤하우스. 2024-14 3/12~ 9시 정시 출근, 출근에 소요되는 시간 5분, 조용한 5층, 연구실들은 아직 고요하다. 교수에게 부여되는 연구실에 앉아 커피를 내려 마신다. 그러나 이 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공부보다 운영, 성찰보다 하루하루를 불나방처럼 보내는 일상으로 그간의 루틴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행복감보단 절망담이, 열정보단 무기력이 강하다.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려면 나의 루틴을 찾는 방법은 읽고 쓰는 것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다시 읽는 것이다. 연구실 책상에 외로이 놓여있는 책을 꺼냈다. 이승우의 장편이 내게로 왔다. 내용도 의도도 모른다. 그저 이승우의 장편이라는 이유로 읽기 시작한다. 행복하기를 기도하면서.(3/12) 수필같은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1995).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웅진출판. 2023-29 5/22 소설 읽기의 중심을 잡으려면 시간적으로 지나치게 편식하면 안 된다. 요즘 책들은 손으로 들고 다니며 읽기도 가방에 넣어 다니기도 편하다. 출장이 많은 오월은 편리함을 우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손에 쉽게 잡히는 책들을 우선 읽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살짝 깊이 있는 소설을 읽고 싶어 진다. 노작가의 문장은 먼저 낯설지만 어휘가 풍부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 대의 세상을 상상해 보는 즐거움도 있다. 그런 시간이 이어져 지금이 있다고 생각 들면 이것이 역사인가 보다 싶어 진다. 가끔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는다. 엄마의 말뚝 이후 새로 한 권 빌렸다. 등의 어휘가 새로워 메모했다. 한국전을 배경을 하는 소설이다. 작..

너무 한낮의 연애 2022-18

김금희 소설 (2016). 너무 한낮의 연애, 문학동네. 지나치게 밝은 하늘색의 표지는 추운 겨울 새벽의 낮은 불빛에도 존재감이 컸지만 정작 소설을 집어 든 것은 봄이 멀지 않은 날이었다. 삶의 회전축에 이상한 떨림이 감지되었고, 전조였던 떨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라 알려준 순간은 상실과 모욕이라는 낱말을 가져다주었다. 9편의 소설에는 잔인한 일상을 보냈거나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가 너무 많이 오롯이 그저 담겨 있었다. 슬펐다. 읽는 동안 가슴에 구멍이 생겼다. 소설에 빠져있는 동안 그들이 되어 밝음이 만들어낸 깊은 그림자 속의 폭력과 수치와 불안을 함께 했다. 때문일까? 짧은 문장들을 그저 빨리 읽어치울 수 없었다. 딱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아니면 세상에서 불안이란 것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살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2022-5

정이현 소설 (2018).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타인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을 바라지 않는 현대인. 간혹 그것을 평화나 안전지대라고 생각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안정이라고 착각한다. 따지고 보면, 무엇이든 언제라도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들임에도 그것을 자신의 공간 혹은 영역이라고 믿고 그 안에서 일상을 유지하려는 태평하고 태연한 자세. 그런 이들의 이면에는 절대 내 것이 다치거나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있다. 우리의 이런 미숙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들. 어처구니없게도 아이들은 친구라는 이름의 존재를 악랄하게 괴롭히고, 괴로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괴롭다 못한 아이는 스스로 죽는 선택을 한다. 사람은 세상을 더욱 안정되고 평..

50.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김금희 (2018).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김금희의 짧은 소설. 표지의 그림이 본문의 그림들이 좋다. 여행지 어느 곳의 작은 화랑에 소품으로 전시될 될 듯하다. 그림을 그린 이는 '곽명주'. 기억해 두자. 어디선가 만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은 이름마저 수집하는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많은 이름들을 어디에 저장해 두는 것일까. 얼마만큼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일까. 어떤 순간이 오면 어떤 기준으로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윤경'으로 시작해 '현우와 은리'까지 이 책에 담긴 이름만 세면 모두 몇 개일까 싶었다. 세어볼 요량으로 메모를 시작했다가 포기했다. 텅 빈 여백 같았다. 연휴동안 크게 하는 일 없이 시간이 무료했던 탓일까. 문장이 ..

41.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소설집(2019).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문학동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있다. 방금 한 나의 선택이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거나 강박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운 순간이 있다. 어쩌면 누구나 그러면서 사는 것인지 모른다. 열이 나니 땀이 절로 난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두개골의 온도가 높아진다. 사람의 체온을 높이는 것이 바이러스뿐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 체온을 높이는 주범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물 때문이다. 우리를 닮은 인물들. 모두의 일상을 닮은 사건과 관계들. 하나씩 읽다보면 어이가 없어지는 일도 있지만 삶이 정리되기도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나 사람에 대해 이해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소설 읽기는 언제나 흥미롭니다. 지금처럼..

40.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하나의 눈송이

제목이 길다. 은희경 소설집 (2014).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문학동네. '세상 모든 사람은 유니크(unique)하다.' 한사람 한 사람 특별한 존재라는 말이다. 대학 때부터 무지무지 많이 들어오던 말이다. 단 하나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고 산다. 비슷하게 생긴 듯 만들어진 듯 하지만 전혀 엉뚱하게 다르다. 우리는 다른 것을 개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정체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사 시험을 쳤다.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어렵더라. 그저 한번 쳐보는 것이 취업이나 진로를 위해 꼭 1급이 필요한 청춘들 앞에 할 말은 아닌줄 안다. 조용히 치고 조용히 나왔다. 근데 너무 어렵더라. 내 눈에는 청춘들이 너무 짠해 보였다. 시험이 목표가 아닌..

2. 최은영(2016). 쇼코의 미소

최은영(2016).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1984년생 젊은 작가의 소설집. 중단편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읽기를 마친 느낌은 따뜻하다. 유난히 추운 날이 계속되던 겨울 속에 베란다 가득 종일 머무르는 햇살처럼 기분 좋은 따스함이 남는 작품이다. 7편 모두 여성의 시점에서 씌여있다. 할아버지와 손녀, 할머니와 손녀, 엄마와 딸, 친구 간의 얘기에 연하지만 섬세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에서는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가 야기하는 아픔이 관계를 파괴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하였고, 와 은 세월호 희생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모두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지만 잊고 있다가 소설을 읽으면서 괜히 눈물이 났다. (요즘 소설을 보며 잘 운다. 이것도 나이 탓??) 는 할아버지, 나..

요시모토바나나의 책 두권

요시코토바나나 소설집(2003). 막다른 골목의 추억, 민음사. 요시모토바나나(2010). 도토리자매, 민음사. 두권 모두 번역은 김난주 바나나의 글은 언제나 그렇 듯 읽기는 쉽다. 그러나 읽다보면 이해가 어렵다. 도대체 뭔 말을 하고 싶은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일관되게 느낌이 오는 것은 삶의 주인으로서 나는 그저 나일뿐이라는 것이다. 이때 가장 잘 어울리는 낱말은 이다. 소설집 은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상처나 실패를 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두었다. 굉장히 고통스러울 법한데, 그래서 잔인하게 포기하고 싶을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일상이 너무 평온하게 그저 묵묵히 계속되고 있다. 그런 것이 삶이라고 너무 잔잔하게 지나치게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좋다는 건지 아님 싫다는 건지 하고픈 말..

김애란(2019).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산문(2019).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1. 이유 사람들은 늘 묻는다. 소설가에게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하고 우리는 늘 묻는다. 자신과 타인에게 "당신은 왜 사는가?" 김애란은 답한다. '누군가 우리에게 삶이, 인생이, 역사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데 굳이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 묻는다 해도 할 수 없었다.' 이유를 물어도 답은 그냥 사는 거라고.... 그렇다. 이미 오십을 훌쩍 넘기며 살고 있는데~~ 사는 이유를 굳이 붙여야할 까닭이 있을리 없다. 2. 이름 우리 모두의 근원. 누군가 한 사람을 불러야 하면 무의식에서 그저 튀어나오는 이름. 엄마... 그리고 내 정체성의 중심 가족 우리의 성장과 세월을 함께하면서 한때 가장 소중했다가 다시 잊혀지고, 또다시 기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