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8

크리스마스타일

김금희(2022). 크리스마스 타일, 창비. 2023-47 9/12~ 이런저런 인문학 서적을 읽다보면 소설이 무척 고프다. 명로진의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러 갔다. 신착도서 코너에서 딱 발견했다. 딱 그자리에 김금희가 있었다. 작년 겨울 남해 봄날의 책방에서 살까말까 했던 책이다. 읽기 시작한다. 또 어떤 이웃들이 어떤 얘기들을 들려줄까. 설레임 시작. 김금희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일까. 크게 감동받거나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복잡한 관계도 없고, 사건도 없고, 개인들의 소소한 삶을 그리고 있어 무난했기 때문일까. 크게 적어두고 싶은 것이 없다. 방송국을 배경으로 일하는 사람들. 이들의 삶, 삶을 이루는 생활과 생각,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 속 인물들의 얘기. 다만 암 투병으로 휴직했다 복직해 가는 은..

사랑밖의 말들

김금희(2020). 사랑 밖의 말들, 문학동네. 2022-68 사회과학 책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허기지듯 소설이 마구 읽고 싶어 진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쌓아두고 빌린 순서대로 읽지 못한다. 외국 작가의 책이 너무 두꺼워 훑어보고는 괜히 망설인다. 라는 익숙한 이름과 파스텔 빛깔의 표지를 핑계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을 쓰고 남은 시간에 소설가는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역시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남은 시간에도 또다시 소설을 생각했다. 그런 저런 생각과 사건들이 다시 소설로 이어질 때 까지 다른 형식의 글을 빌려 끊임없이 쓰고 쓴다. 다른 형식의 글이지만 문장이 소설을 닮았다. 모르는 내가 봐도 그렇다. 가족에 대해, 자신의 소설에 대해, 건너온 어린 날과 친구와 기억 속의 영화 혹은 익명의..

너무 한낮의 연애 2022-18

김금희 소설 (2016). 너무 한낮의 연애, 문학동네. 지나치게 밝은 하늘색의 표지는 추운 겨울 새벽의 낮은 불빛에도 존재감이 컸지만 정작 소설을 집어 든 것은 봄이 멀지 않은 날이었다. 삶의 회전축에 이상한 떨림이 감지되었고, 전조였던 떨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라 알려준 순간은 상실과 모욕이라는 낱말을 가져다주었다. 9편의 소설에는 잔인한 일상을 보냈거나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가 너무 많이 오롯이 그저 담겨 있었다. 슬펐다. 읽는 동안 가슴에 구멍이 생겼다. 소설에 빠져있는 동안 그들이 되어 밝음이 만들어낸 깊은 그림자 속의 폭력과 수치와 불안을 함께 했다. 때문일까? 짧은 문장들을 그저 빨리 읽어치울 수 없었다. 딱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아니면 세상에서 불안이란 것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살아..

한줄 일기 2022.02.24.

언니. 잘 잤는지요? 언니. 그렇게 웃으며 말하면 내가 더 슬프잖아요. 언니. 그냥 함께 가요. 가여운 세실리아. 그 마음 내가 전문이지. 밤은 오고 잠은 가고 곁에는 침묵뿐이고 머릿속은 시끄럽고 그러면서도 뭐 또렷하게 어떤 생각은 또 할 수 없어서 그냥 나 자신이 깡통처럼 텅 빈 채 살랑바람에도 요란하게 굴러다니는 느낌. 나는 세실리아의 손을 잡았다. 손은 아주 차가웠고 웬만한 남자 손만큼 컸다.(김금희(2016). 너무 한낮의 연애 중 89쪽, 세실리아)

한줄 일기 2022.02.25

50.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김금희 (2018).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김금희의 짧은 소설. 표지의 그림이 본문의 그림들이 좋다. 여행지 어느 곳의 작은 화랑에 소품으로 전시될 될 듯하다. 그림을 그린 이는 '곽명주'. 기억해 두자. 어디선가 만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은 이름마저 수집하는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많은 이름들을 어디에 저장해 두는 것일까. 얼마만큼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일까. 어떤 순간이 오면 어떤 기준으로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윤경'으로 시작해 '현우와 은리'까지 이 책에 담긴 이름만 세면 모두 몇 개일까 싶었다. 세어볼 요량으로 메모를 시작했다가 포기했다. 텅 빈 여백 같았다. 연휴동안 크게 하는 일 없이 시간이 무료했던 탓일까. 문장이 ..

41.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소설집(2019).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문학동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있다. 방금 한 나의 선택이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거나 강박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운 순간이 있다. 어쩌면 누구나 그러면서 사는 것인지 모른다. 열이 나니 땀이 절로 난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두개골의 온도가 높아진다. 사람의 체온을 높이는 것이 바이러스뿐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 체온을 높이는 주범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물 때문이다. 우리를 닮은 인물들. 모두의 일상을 닮은 사건과 관계들. 하나씩 읽다보면 어이가 없어지는 일도 있지만 삶이 정리되기도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나 사람에 대해 이해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소설 읽기는 언제나 흥미롭니다. 지금처럼..

27. 경애의 마음

김금희 (2018). 경애의 마음, 창비.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상또라이 공상수와 제멋대로 소신주의자 박경애의 조합이 뭔가 어색해서 읽기 초반부 제대로 몰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역시 끝까지 가봐야 한다. 그렇게 어색했던 조합의 두 사람. 개인으로서의 두 사람과 둘 사이의 오랜 관계와 얽힘은 역시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스토리지만 마치 영화 '접속'을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이상하게 친밀하고 깊었다. 또라이인줄 알았던 공상수는 실제 정직하고 올곧은 남자였고, 제맘대로 소신주의자인 줄 알았던 경애는 세상을 보는 속 깊고 정직한 성품의 인물이었다. 둘 사이에는 은총(E)이 있었고,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있는 반도 미싱이라는 직장의 동료로서 연대감도 있는 관계였다.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김금희 (2020). 복자에게

김금희 (2020). 복자에게, 문학동네. 제주 고고리(이삭이라는 의미의 제주어)섬 다랑초등학교 58회 졸업생. 이영초롱, 복자 그리고 고오세. 이영초롱의 시점에서 어린 날과 현재를 오가며 이어지는 제주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그냥 빌려놓은 책 중에 가장 부피가 작아 무게가 안나갈 것 같아 가방에 넣었는데 아직 어둑한 하늘 속, 독서등을 켜고 읽은 책이 하필 제주 얘기여서 심쿵했다. 혼자 사흘간 여행하면서 읽은 속의 문장들은 심심하지만 건강에 무척 좋을 듯한 제주 채소같은 느낌이었다. 때문일까? 읽은 내 생각을 억지로 서평이랍시고 쓰기보다 홀로 있던 공간에서 건조한 마음에 작은 진동을 주었던 문장들을 기억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게 꼭 필요했던 비타민같은 문장들을 옮겨 적었다. 이런 글을 쓸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