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사랑밖의 말들

Jeeum 2022. 10. 10. 10:17

김금희(2020). 사랑 밖의 말들, 문학동네.

 

2022-68

 

사회과학 책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허기지듯 소설이 마구 읽고 싶어 진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쌓아두고 빌린 순서대로 읽지 못한다. 외국 작가의 책이 너무 두꺼워 훑어보고는 괜히 망설인다. <김금희>라는 익숙한 이름과 파스텔 빛깔의 표지를 핑계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을 쓰고 남은 시간에 소설가는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역시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남은 시간에도 또다시 소설을 생각했다. 그런 저런 생각과 사건들이 다시 소설로 이어질 때 까지 다른 형식의 글을 빌려 끊임없이 쓰고 쓴다. 다른 형식의 글이지만 문장이 소설을 닮았다. 모르는 내가 봐도 그렇다. 가족에 대해, 자신의 소설에 대해, 건너온 어린 날과 친구와 기억 속의 영화 혹은 익명의 사람에 대해 심지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비에 대해 끊임없이 무의식으로 소설을 생각한다. 이렇게 읽혔다. 소설을 위한 소설을 향한 자신의 소설 밖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얘기를 읽다보면 때때로 함께 우울해진다. 간신히 넘어온 시간에 예민해진다. 그런 순간을 넘으려면 읽기를 그만둬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따끔거리는 통증을 애써 어루만지면서 읽는다. 한낮을 말하면서도 외롭고 처절하고, 밤과 달을 얘기 할 때는 차분해서 쓸쓸하다. 혼밥을 하며 누군가와 함께 였으면 하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다정함, 이름을 부는 것조차 어렵지만 굳이 이름을 불러 수신처를 정해야 다음으로 갈 수 있다고 가능성으로 애써 위로하는 그녀의 글이 나는 참 좋다.

 

담담하고 차분한 글의 이면에 발랄한 40대의 건강한 관계들도 보였다. '송년 산보' 그럴싸한 주제이지만 결국 어울려 마시고 먹고 이집저집 하다 날이 샜다는 얘기에 빵 터져버렸다. 나도 한번 해볼까 싶다가 겨울밤 산보를 핑계로 그렇게 놀다가 죽는 건 혹시 아닐까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인생의 송년을 잘 보내기 위한 계획을 짜야한다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돌아왔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빨라 작가도 혼란스럽다. 적응이 어려우면 당연히 혼란스럽다. 그러나 작가는 혼란스럽지만 그런 세상에 예민해야 함을 안다. 변화 속에 남는 여전한 허무와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누군가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한다. 화려한 식탁보다 식탁에 모여든 사람들의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그늘에 대해 잊지 않는 한 소설가 김금희의 글을 읽는 삼천명의 독자 가 기꺼이 될 것이다.

 

당신이 말한 영화 <윤희에게>, <매기스 플랜>, <조용한 열정>이 나의 시간을 채워 주었다. 당신에게 가 닿지 않을 말이지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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