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21

2023.01.21

음력 섣달그믐 까치 까치설날. 손만두를 빚는다. 설날 전날,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언제나 만두를 빚었다. 떡국을 끓이기 위한 가래떡을 썰기도 하고, 길쭉길쭉 떡볶이용 떡을 썰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떡을 써는 일은 사라졌지만...... 엄마가 아프시기 전까지는 항상 만두를 빚었다. 엄마의 유전자는 내게로 왔다. 엄마가 안 계셔도 우린 만두를 빚는다. 엄마는 언제나 만두피까지 손수 만들었지만 지금은 시판용 만두피로 손쉽게 만두를 빚는다. 만두를 빚을 때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마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만두를 빚었을 것이다.

한줄 일기 2023.01.21

짧은 여행 : 춘천

새벽 서쪽 하늘 끝에 여전히 보름달이 떠 있었다. 동이 트기 전 북대구 IC를 벗어나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지면을 향해 기울어가는 달님을 벗 삼아 짙은 안개를 뚫고 조심조심, 아슬아슬 춘천에 닿았다. 고개를 넘어 미끄러져 내려갈 듯한 경사면 아래 춘천 IC가 있다. IC를 지나면 '낭만의 도시'라는 안내가 오른편에 보인다. 춘천의 가을은 맑고 고운 햇살에 깊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한림대학교'에 무사히 닿았다. 일찍 출발한 때문일까 여유로운 시간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토요일의 대학 캠퍼스도 혼자 화려하게 가을을 타고 있었다. 서문 옆 '소프트웨어융합대학' 건물이 묘한 정취를 주었다. 나름 새롭게 단장을 했지만 타고난 성품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예전 국민학교 건물이었던 ..

과꽃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아름다운 가사로 시작하는 동요가 있다. 출근길 자동차 안,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원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생각이 잊고 지냈던 오래전으로 되돌아갔다. 거기엔 엄마가 나와 함께 있었다. 2011년 치매 진단을 받은 엄마는 2년 뒤 쓰러져 고관절 골절로 입원을 했다. 무던히 애를 썼지만 스스로 관리가 안되던 엄마의 입원은 계속 길어지고 있었다. 그날 나는 휠체어에 앉는 것이 가능해진 엄마를 모시고 병원 옥상 정원으로 늦은 봄날의 햇살을 맞으러 갔었다. 옥상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고, 작은 싹들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식물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아는 것은 고작 채송화 정도. 장애 아..

47. 두 방문객

김희진 (2019). 두 방문객, 민음사.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22. 윤고은(밤의 여행자들), 조남주(82년 김지영), 정세랑(보건교사 안은영), 장강명(한국이 싫어서) 등등. 요즘 아주 핫한 젊은 작가들의 장편이 민음사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통해 많이 출간된 듯하다. 솔직하게 말해 앞선 최민석 작가의 에서 어이없이 역습을 받고(?), 나름 상처 받은 내 영혼을 달래줄 것으로 기대하고 뽑아 든 책이다. 여름의 끝자락에도 따가운 햇살 아래 풍덩 뛰어들고 싶어지는 수영장이 표지인 것도 의미심장했고, 뒷 표지의 문장에도 호기심이 뿜뿜 생겼다. "너희들 누구니? 내 집에 온 이유가 뭐야?" 대체 이유가 뭘까? 싶었다. 아들을 잃은 엄마 '손경애' 자세한 리뷰는 다 읽고 난 다음으로^^ 다 읽고..

나의 베란다 꽃밭 6

나의 베란다 꽃밭은 돌아가신 엄마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고 3년 차였던가. 집에서 혼자 계시다 넘어져서 고관절이 부러졌다. 수술을 받고 퇴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가 입원한 다음 나는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직접 전부 해야 했다. 그동안은 엄마가 하는 것을 돕는 정도로 했다. 원래 엄마의 것이었고, 엄마의 몫이었던 집안 살림이었다. 치매 초기에는 잘하든 못하든 원래 하는 일을 계속하셨다. 나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엄마도 할 수 있는 한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굳이 내가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고가 났고, 엄마는 처음으로 집을 떠나 긴 병원생활을 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집 베란다는 작지만 늘 꽃이 많았다...

어머니

제주 버스 터미널에서 서귀포행 급행 181번 버스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의 버스 정류장에는 늘 그렇듯 부지런한 사람들의 바쁜 표정이 가득하다. 버스 출발 시간을 챙기지 않고 나온 탓에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안내판의 시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이라는 시가 유독 눈에 보였다. 엄마가 보고 싶다. 그리움 (김정자) 별무리 고운 밤 구름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밤하늘에 섬 하나 그 섬에 계신 동그란 얼굴 하나 나의 어머니 할 말씀 많으신지 오늘 밤 별무리로 수놓는다. 이제 곧 음력 3월 3일 엄마 생일 엄마가 그립다. 내게도 엄마가 엄마의 말이 밤하늘의 별이 되고, 바람이 되고, 새가 되어 날아올 것이다.

나의 베란다 꽃밭 1

2014년 4월 15일 지난해 가을, 엄마와 함께 연경동 꽃시장에서 사 온 노란 국화입니다. 다지고 나서, 추운 겨울 동안 실내로 들여놓은 적도 없는데 어느새 잎이 무성해지고 피어날 꽃봉오리들이 잔뜩 열렸습니다. 이 봄날에~~~ 나머지 싹은 채송화입니다. 작년에 받아논 씨앗을 뿌렸더니 이렇게 자랐어요. 곧 분갈이를 해야 합니다. 제가 베란다에서 꽃을 가꾼다는 게 이상한 분들 많을 거예요. 저도 같은 기분입니다. 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엄마 때문입니다. 지난해, 엄마가 다쳐서 입원한 이후로 집안 살림은 본격적으로 저의 몫이 되었어요. 원래 꽃을 좋아하던 엄마가 가꾼 베란다에는 많지는 않으나 늘 싱싱한 잎과 꽃들이 가득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느낌이 사라졌어요. 나이 때문에 취미도 흥미도 바뀌나 생각했..

나의 할머니

작년부터 제주 올레 걷기를 시작했다. 대략 달에 한번 정도 가서 하나의 코스를 걷고 온다. 하루에 걷는 시간은 대략 4~5시간, 거리로 치면 짧게는 9킬로에서 길게는 21킬로 정도를 걷는다. 평지일 때도 있지만 울퉁불퉁 현무암이나 동글동글한 돌들 가득한 바닷길을 걷기도 한다. 하늘이 보이는 얕은 숲길이나 무서울만큼 한적한 길도 걷는다. 혼자 걷기도 하고 둘이 걷기도 한다. 마을이나 밭을 거쳐가기도 하고 산(오름)도 걷는다. 때로 뜨거운 햇빛 속을 하염없이 걸어야 하고, 비나 눈이 오기도 한다. 제주의 바람을 견디며 걷다 보면 인생도 이토록 다양한 순간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터벅터벅 걷다 보면 때로 기운이 빠지고 지칠 때가 있다. 흔히 당 떨어졌다는 말이다. 이럴 때를 위해 내 가방 속..

보물찾기

이틀 전 세탁한 옷들을 서둘러 걷어서 소파에 앉았다. 엄마가 오랫동안 입고 지냈던 계절 점퍼를 입어 볼 요량으로 세탁해 널어 두었다. 게으른 눈빛이 닿는 곳에 놓아둔 액자에 엄마의 얼굴이 비친다. 둔하지만 주먹만 한 아련한 감정이 가슴을 두드린다. 점퍼에 얼굴을 묻었더니 친숙한 냄새가 배어 나온다. 세탁세제로 빨아 몇 번이고 헹군 다음, 봄 햇살로 이틀 동안이나 말렸건만 어찌 여전히 엄마의 냄새가 나는 것일까? 역시 사람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엄마 곁에 누워 꼬옥 안으면 코끝으로 깊게 전해오던 그것이다. 가끔은 등을 토닥토닥 어루만져주기도 했다. 여전히 나를 어린 아이로 생각하는 듯 자장가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반짝이던 눈동자가 초점없이 멍해지면 누구냐고 밀어내기도 했고, 가끔 때리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