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꽃이에 오래 두는 책들이 있다.
책이나 자료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가끔 책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쉽게 재활용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꿋꿋이 서가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 있다.
방치한 세월만큼 뽀얗게 먼지가 쌓이지만
제 몫만큼의 존재감을 빵빵 뿜어대는 책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원일 선생님의 <마당깊은 집>
제목부터 뭔가 이야기가 잔뜩 숨어 있는 듯하지 않은가?
오랫만에 꺼낸 이 책 뒤에 <479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정가는 7,000원으로 되어있다.
아마 어느 서점 반값 할인 코너에서
제목에 끌렸거나
훑어 본 내용 속에 무수히 드러나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언제인지 난 기억하지 못한다.
지난 여름 <수필과 지성> 여름 기행에
<마당깊은 집>의 배경이 된 그 집, 그 골목을 다녀왔다고 했다.
물론 나는 가지 못했다.
엄마 가시고, 시간이 남아돈다.
이유도 없이 빼들고 읽기 시작했다.
지은이 김원일 42년생
엄마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왔다.
왠지 읽는 동안 엄마도 이런 고생을 10대에 했겠다 싶었다.
전쟁 이후 가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고
찢어졌던,
가난했던 시대에 십대를 보낸 그 동네
그 집에서의 불과 딱 1년...
<마당깊은 집>에 살았던 이야기를
엄청한 내공으로 풀어내고 있다. 실로 엄청나다.
이책을 보며 감동한 첫번째 이유는
기억력이다.
전쟁의 상처, 가난의 고통, 배고픔, 절망 때문이었을까?
지은이가 묘사하는 마당깊은 집과 그 집에 함께 살았던 인물에 대해 묘사가 정확하고 풍부하다.
단순히 기억으로 이렇게 정밀할 수 있을까?
어째튼 이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작가의 기억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친숙한 갱상도 사투리
경상도 대구에서 국민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사는 나도
전혀 감을 잡기 어려운 어휘들
하지만 정감어린 그 사투리를 줄을 그어가며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재밌었다. 공부가 많이 됬다.
역시 소설이란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시절의 소년이 지금 원숙한 노련미의 작가가 되어있다.
사진을 보니 멋지다.
책을 읽다보면 엄마가 생각나기도 하고
한편, 잊기도 한다.
이제 마지막 49일이 가까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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