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 하루프 , 한기찬 역 (2013). 축복, 문학동네.
2022-70
콜로라도의 작은 마을 '홀트'에서 오랜동안 철물점을 운영하며 가족을 이루고 살아온 대드 루이스. 한 달 시한부로 진단받는다. 남을 시간이 짧다. 대드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 가족들과 이웃들이 죽음을 맞는 대드와 함께하는 과정을 소설가 '켄트 하루프'가 자신만의 속도로 담담하게 무람하게 쓴 작품이다.
일상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모두가 언젠가 죽는다. 피해갈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죽음을 향해 떠나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자기 앞의 생은 죽음으로 끝이 나니까.
대드의 남은 한달. 누군가에겐 죽음에 이르는 한 달도 보통의 사람들에겐 일상이다. 엄마를 잃은 아이와 식사를 하고, 옷과 자전거를 사주고, 그 아이가 자전거를 배우도록 함께 달려주는 일, 독립기념일의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며 초원에 누워 있는 일, 비가 내리거나 비가 그친 뒤 풍겨 나는 냄새에서 평화로움과 친밀감을 느끼고, 자신의 집 식탁이나 포치에서 소박한 저녁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정원을 돌보는 일들. 모두가 일상이다. 당연히 일상은 사람들의 자유이고 권리이다.
대드는 점차 움직일 수 없어지고 힘이 빠지고 자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 땅에 와서 하나씩 얻은 것을 다시 하나씩 되돌리는 일. 그것이 노인이 된다는 의미이고 삶을 마감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대드가 결혼을 하고, 철물점을 운영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삶을 지키고 살아오는 동안 겪은 어쩔 수 없는 일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해 이웃에게 자신에게 가족에게 헌신했다. 그리고 그 헌신은 축복(benediction)이 되어 그 사람의 삶을 바로 서게 만들기도 했다. 자신이 얻은 것을 얻게 해 준 사람에게 돌려주는 일. 쉽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을 했던 몇 번의 순간들과 일상들로 대드의 삶이 이어지고 이어져왔다.
하나 성정체성에 문제가 있었던 아들, 아빠와의 갈등으로 집을 떠나 자신만의 세계로 떠난 아들 만이 후회와 회한과 고통으로 남아 끝까지 그를 괴롭힌다. 여전히 그의 생각 속에서 아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가까이 안아줄 수 없는 존재이다.
아내. 1947년 홀트 2번가와 메인스트리트가 맞닿은 모퉁이에서 처음 만나 대드의 젊고 적극적인 구애에 매혹 당해 6개월 후 결혼을 하고 딸 로레인과 아들 프랭크를 낳았다. 성인이 된 대드의 일생은 아내 메리와의 삶이 전부이다. 소설에서 아직 말을 할 수 있는 대드의 마지막 언어도 메리를 향한 것이다. "당신은 내게 모든 것이었요. 오랜 세월 동안 내내, 내게 전부였다오. 그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관계를 생각한다. 한 시절 동안 무수히 많이 만나 무수히 많은 밥을 먹고 무수히 많은 말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젠 무관한 각자의 공간으로 떠났다. 생각과 마음만 해마 깊숙이 남아 특정한 순간에 되면 떠오르고 그리워진다. 죽는 순간, 누가 떠오를 지 궁금해졌다. 대드는 마지막에 아들과 부모를 생각했다. 부모는 아들에게 기다린다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미 50대가 된 아들은 삐뚤어진 채로 대드의 생각 속에 남았다.
삶은 이런 것이다. 맘대로 되지 않는다. 켄트 하루프는 맘대로는 되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을 말해준다. 이것이 노 작가의 구력이고 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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