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소설 (2016). 너무 한낮의 연애, 문학동네.
지나치게 밝은 하늘색의 표지는 추운 겨울 새벽의 낮은 불빛에도 존재감이 컸지만 정작 소설을 집어 든 것은 봄이 멀지 않은 날이었다. 삶의 회전축에 이상한 떨림이 감지되었고, 전조였던 떨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라 알려준 순간은 상실과 모욕이라는 낱말을 가져다주었다.
9편의 소설에는 잔인한 일상을 보냈거나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가 너무 많이 오롯이 그저 담겨 있었다. 슬펐다. 읽는 동안 가슴에 구멍이 생겼다. 소설에 빠져있는 동안 그들이 되어 밝음이 만들어낸 깊은 그림자 속의 폭력과 수치와 불안을 함께 했다. 때문일까? 짧은 문장들을 그저 빨리 읽어치울 수 없었다.
딱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아니면 세상에서 불안이란 것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과연 그런 이들이 있을까? 그런 이들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있는 것일까? 살아온 흔적에서 지우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면 양희의 대본처럼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 미리 알고 불안해하는 것은 아닐까.
지울 것보다 남길 것이 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아주 없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있다는 것을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한꺼번에 자각이 몰려오는 날. 우울증 약을 먹지 않고도, 불면증 약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의지나 목적 혹은 방향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 그것조차 과욕이라 욕을 먹을 것인가?
불면의 밤을 견디며, 남아있는 것이 없다고 투덜거릴 수 조차 없고, 그저 걸을 수도 없거나 손가락만을 움직여 바느질을 해야하고 그러면서도 달라진 자신의 손끝을 하염없이 내려다볼 수밖에 없게 되면. 이것마저 보통의 삶이라 말해야 한다면 과연 이 세상에 남아 견딜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를 견디고 책을 집어들었을 당신에게, 당신은 물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묻기 위해 누군가의 곁에 서는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견디는 것보다 더 나아갈 수 있는 어떤 상태의 이야기가. 그 가능함을 위해 역시 힘을 내보겠다." (작가의 말,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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